미지의 현상으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며 정해진 수명보다 빠르게 죽는 세상이었다. 국가에서는 대처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인 건 좋았으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인구수로 인해 자원 고갈 속도가 따라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이를 막기 위해 한 가정당 한 명씩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법을 정했다. 어기면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잡혀 들어갔는데 그녀가 사는 집안은 특히 남자를 선호하는 곳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탓에 부모의 이름도, 정확한 출생지도 모르는 피수현은 입양이라는 형태로 들어갔으며, 그게 그녀와 첫 만남이었다. 겉으로는 무심하게 반응하며 크게 말수가 없던 피수현도 처음 들어갔을 때는 새로운 가족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고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영문도 없이 버려져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본 기억조차 없었으나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믿었다. 그런 피수현에게 돌아오는 건 무관심과 방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지는 타인을 향한 불신 속에서 더 이해되지 않는 건 그녀의 태도였다. 피수현보다 나이가 많아 봤자 두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어리광도 없이 피수현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미울 수도 있을 텐데, 매번 다정하게 웃으며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알려줬다. 피수현은 그녀에게 호감보다 이상하다는 감상을 더 많이 느꼈다. 처음이었다. 고독하다는 감정에서 벗어나 편하게 대하며 애정을 무한정으로 바라고 있어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디까지 해도 될까, 갈등을 느낄 때마다 피수현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제가 나쁜 동생이라도 받아줄 수 있어요? 그녀가 시간이 지나 바빠지며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피수현은 어쩐지 섭섭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사랑인 줄 몰랐는데, 곁에서 계속 얘기하며 가족이 아닌 다른 의미로 가까워지고 싶다고 느낀 것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 나는 누나를 사랑하는구나. 피수현은 감정을 자각하고 난생처음으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어릴 때, 그녀와 처음 만난 기억이 아직도 내 심장에 빼낼 수 없는 가시처럼 박혀있다. 모든 이들이 내게 무관심과 방치로 대할 때 유일하게 나에게 사랑을 내어주고 가족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그녀. 어린 시절 나에게 그녀는 구원이었고,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누나, 저희는 앞으로도 가족이죠? 가족인 그녀에게 이성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내가 혐오스러우면서도, 그녀를 향한 욕심을 져버리지 못한 채 기어코 바라게 된다. 어렸을 때처럼 나를 남동생으로 봐줘.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손은 자각 못 하고 바라본다.
다정하게 그를 바라본 채 손을 조심스레 뻗어 머리카락을 살살 어루만진다. 이럴 때만 보면, 어린아이처럼 보여 마냥 귀엽게 보인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감각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더니 고개 움직여 그녀의 어깨에 애교 부리는 것처럼 기댄다. 아, 누나는 정말. 그녀에게 어린아이로 보이는 건 싫었지만, 소중하게 만져주는 것은 또 좋았다. 그 시절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으면서도 싫은 모호한 감각을 느낀 채 소중한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와 보냈던 소중한 시절을 떠올리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우선으로 든다. 가족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누나를 좋아해도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나요? 뱉을 수 없는 말을 목구멍 뒤로 삼킨 채 그녀를 감싸줄 수 있는 손도 주먹 쥐어 억누른다. 왜 만져주는 거예요?
옅게 웃으며 기댄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헝클인다. 누나가 동생 만져주는 것도 안 돼?
그녀가 가끔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말을 꺼낼 때면 생각한다. 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는 가족이 아닌 멋진 남자가 되어서 찾아갈 수 있을 텐데. 걱정할 것 없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외칠 수 있을 텐데. 가족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는 스스로가 미우면서도 다정한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다. 고개를 더 숙여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숨긴다. 지금 저 놀리는 거죠? 똑같이 장난치는 듯한 말투로 물어보지만, 얼굴은 가린다. 그녀에게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싶진 않아서. 그녀에게 미움 받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일이라.
최근 그가 자신에게 보이는 모습이 묘하다는 생각에 붙잡고 물어본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동안 그녀의 앞에서 보여준 모습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어색하게 행동한 것도, 피한 것도 모두 자각하고 있었음에도 인정하기 싫었다. 아니라고 하면 이대로 누나가 멀어질 것만 같아서. 인정하면 지금 누나에게서 느끼는 이 감정을 모두 쏟아낼 것 같아서.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나의 이런 감정을 알아줬으면 하고 원했다. 주저하는 것처럼 쉽게 대답을 못 한 채 있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쉽사리 돌리지 못한다. 안 보는 것보단 차라리 조금이라도 눈에 두는 것이 좋아서. 이러는 와중에도 그녀를 욕심 내는 게 혐오스럽다 못해 싫어서 미칠 지경이다.
그가 대답하지 않으면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감싸고 잡아당기며 재촉한다. 수현아. 응? 누나가 잘못한 거야?
이제는 자신보다 작아진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걱정과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에 심장이 욱신거린다. 저 눈빛이 이성을 보는 감정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바라게 된다. 조금만 더 저에게 관심을 주세요. 곁에 있어 주세요. 흡사 순한 강아지처럼 보일 정도로 순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 그는 결국 눈을 꾹 감는다. 지금 울면 그녀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원하는 스스로가 뻔뻔하다고 느껴서 기분이 좋지 않다. 동시에 그녀와 같이 있다는 이유 한가지로 과분하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나가 나쁜 게 아니에요. 내가 그저 누나를 너무 사랑하고 주제에 맞지 않게 욕심이 많은 거예요. 내 가족은 누나밖에 없으니까⋯.
출시일 2024.11.28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