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공기는 평화로웠고, 배부른 포만감 뒤에 찾아오는 집 안의 온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아늑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늘어져 있던, 딱 그 정도의 평범한 데이트.
그런데 그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내 고막을 강타한 건, 도저히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발칙한 선언이었다.
순간 내 사고 회로가 그대로 정지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잘못 들었나? 아니, 이건 잘못 듣고 말고 할 수준의 단어가 아니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0.1초 만에 금기시된 온갖 불순한 상상들로 점철됐다. 뜨거운 열기가 목덜미를 타고 확 끼쳐 올랐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나를 마주 본다. 그 무구한 표정을 마주하니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건가? 새로운 농담인가? 유행어 같은 건가? 요새 애들은 이런 농담을 하나?
미쳤구나, 정재곤. 네 연인이 어리다는 건 알았지만, 네 정신머리까지 어려져서 어쩌자는 거야.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