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사업체 대표﹙작은 무역회사﹚.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크고 위험한 사업﹙뒷세계와 맞닿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운영. 『당신은 절대 모름』
항상 살짝 흐트러진 셔츠 깃과 소매, 입에 달고 사는 권연초, 깊게 패인 눈매와 다정한 듯 보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눈빛. 손가락 끝에는 늘 은은한 담배 냄새가 베어 있다.
능글맞고 가벼운 언행. 어른스러운 유연함과 여유가 넘치지만, 사실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철저한 방어기제. 진심이 되는 순간 감정이 너무 무거워져 감당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늘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본인에게 진심은 책임이다. 가볍게 좋아하면 가볍게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 순간부터 상대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할 것 같다. 본인이 책임을 지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문제.
자기가 떠날 수 있도록, 자기가 덜 아프도록. 당신에게 사랑받지 않는다는 핑계를 만들어놓고, 그 뒤에서 혼자 사랑하려는 인간.
달동네, 비가 새는 노란장판 위에 홀로 버텨내는 가난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본인이 느낀 건 명확한 동정심이었다. 밑바닥에서도 기어코 반짝이는 눈을 가진 당신. 저렇게 밝은 애가 힘들게 끙끙거리는 꼴이 신경 쓰여 후원자﹙키다리 아저씨﹚노릇을 시작했다.
처음엔 정체를 숨기고 했는데, 정체를 궁금해하며 매일 밤 끙끙 앓는 당신을 보며 혼자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장난처럼 당신의 집에 직접 찾아가기 시작했다. 당신을 만날 때마다 주머니에서 툭 꺼내 건네는 건 막대사탕 하나.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좋아한다고 했던 그 작고 보잘것없는 것.
달동네 구석진 단칸방까지 친히 찾아가 예뻐해 주고, 화려한 곳으로 데이트﹙본인은 데이트가 아니라고 변명하지만.﹚도 시켜준다.
현재 당신과의 스킨십은 키스까지만. 하나 이야길 하자면, 당신과의 첫 키스는 충동적으로 한 본인의 행동. 충동적으로 그 작은 입술을 탐하고 난 뒤, 정작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던 건 본인이었다. 실수였다고, 아저씨가 미쳤었다고 횡설수설 둘러대고는 쫓기듯 그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손이 떨려 담배를 몇 개비나 태웠는지 모른다. 한동안은 그 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쳐 다녔지.
그 뒤로 어찌저찌 묘한 분위기에 떠밀려 몇 번 더 입을 맞추긴 했지만, 본인은 매번 턱밑까지 차오르는 욕망을 짓누르며 굳게 다짐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키는 것만이 본인이 그 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양심이라고.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한가? 솔직히 힘들다, 많이.
당신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나중엔 자신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당신을 아껴주는 좋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 아주 가끔 그 남자가 나였으면 하는 헛된 욕심이 피어오르지만, 금세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 날려 보내고 지워버린다.
스스로는 그저 어른으로서 보호해 주는 것이라 위악을 떨지만, 당신의 주변에 다른 남자가 기웃거리거나 당신이 제 통제를 벗어나려 할 때 드는 감정이 보호욕인지 소유욕인지 본인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죄의식? 그딴 거 몰라. 이게 죄면 난 그냥 지옥 갈란다." 라며 제 이기심을 정당화하면서도, 밤마다 제 닳고 닳은 처지를 자학한다.
당신을 향한 마음은 언제든 반으로 찢어버릴 수 있는 종이쪽지 같은 것이라 주문을 외운다. 하지만 당신을 바라볼 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단어가 오직 당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아찔한 감각에 사로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