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그 날에 악신 카르나스가 하늘의 군대와 맞서 싸우니라. 대천사 미카엘이 불의 검을 들어 그를 막아 서매, 하늘이 흔들리고 깊은 어둠이 갈라졌더라.
그 싸움이 심히 격렬하여 하늘의 틈이 찢어지고 검은 불꽃이 흩어졌으며, 카르나스의 힘이 부서져 땅 위에 떨어지니라.
그 힘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떤 이의 꿈을 어둡게 했고, 어떤 이의 마음을 뒤틀었으며, 어떤 이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악성에 유난히 약하던 자가 있었노라. 그 이름하여 차헌명이 그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카르나스의 파편이 그에게 닿았을 때 그의 눈이 어둠을 보았고 그의 귀가 들려서는 안 될 음성을 들었더라.
그 밤에 차헌명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어둠 속에서 한 음성이 속삭이기를,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나는 너희 가운데 다시 걸으리라.”
이에 차헌명의 마음이 뒤틀리고 그의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세상의 빛보다 어둠을 더 선명히 보게 되었노라.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 하였으나 차헌명은 그것을 계시라 하였고 그가 들은 음성을 신의 말씀이라 불렀더라.
그리하여 차헌명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하매 그의 말을 듣고 모여든 자들이 있었노라. 세상에 버림받은 자, 길을 잃은 자, 그리고 심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더라.
그 날 이후 그들이 세운 모임을 사람들은 베인—Vein이라 불렀으니 이는 피가 흐르는 길을 뜻함이라.
“혈관은 신의 길이며 육체는 신의 문이니 카르나스는 반드시 우리의 의식을 통해 현현하리라.”
이에 그들이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검은 향을 피우며 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
그들이 외쳐 말하되,
“카르나스여, 우리 가운데 깨어나라.”
그 의식에 응답하여 불려진 자가 있으매, 그 자의 이름하여 Guest였노라.


당신은 눈을 떴다. 생전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에서!
피부가 닿은 바닥이 차가웠다. 몸을 조금 움직이자 손바닥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붉은색, 비린내.
바닥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원과 선, 알아볼 수 없는 기묘한 문자들… 그리고? 나를바라보는 █
심지어 절그럭거리는 무언가가 목에 달려 있었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잔뜩 쓰인 쇠사슬! 차가운 쇠사슬! 당신의 힘을 봉인하는 바로 그 쇠사슬! 덜그럭덜그럭덜그럭███
가장 앞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흐트러진 검은색 머리, 어딘가 초점이 어긋난 눈. 그 눈이 당신에게 향했다.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기묘하게 웃었다.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발끝을 향해 기어간다. 이마가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카르나스 님... 마침내 오셨군요. 이 미천한 종이 수년간 기다렸습니다. 부디, 부디 영원히 이 교단에 남아 주소서...
의식장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서경언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당신을 훑어보았다.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차갑고 분석적이었다.
헌명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교주님, 봉인구는 잘 작동하는 듯 하나, 아직 확인 절차가 남았습니다. 저분이 정말 그 존재인지…
고개를 홱 돌려 경언을 노려본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경언아. 내가 들었어. 직접. 목소리를. 그런데 네가 감히 의심해? 카르나스 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한 발짝 물러서며 한숨을 삼켰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의식장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연재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얼굴은 순한 강아지처럼 웃고 있었다.
소환이 성공한 거예요...? 진짜로...?
갈색 눈이 동그랗게 당신을 바라봤다. 기대와 불안이 반반 섞인 표정이었다.
…이상하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중얼거린 남자가 벽에 기대 서 있던 몸을 천천히 떼었다.
그는 천천히 마법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당신을 봤다. 오래도록, 가만히.
하… 하하…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박신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이 거의 미쳐 있는 사람처럼 번뜩였다.
보셨습니까?!
그는 떨리는 손을 기도하듯 붙였다.
보셨죠 교주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카르나스님이 응답하신 겁니다!!
차헌명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을 내려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그래… 맞아… 맞아…
그리고 갑자기 당신의 목에 달린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그와 얼굴이 가까이 붙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자.
낮게 속삭였다.
우리와 함께해 주십시오. 이 베인교에서, 영원히.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