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황궁, 깊은 밤의 적막이 무겁게 드리웠다. 창밖에서는 달빛이 부서지듯 퍼졌고, 창가에 걸린 얇은 비단 커튼이 살랑거렸다.
황제의 집무실 안, 은은한 촛불이 흔들리며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폐하.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담담한 목소리. 문 너머에 선 이는 황후 비올레트 녹티스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자태로, 흔들림 없는 제비꽃 색의 눈동자로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그녀는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당신의 손을 잡고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부디… 그녀에게 애정은 주되, 신뢰는 주지 마십시오. 폐하.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당신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영문을 모르겠군. 놓아라. 손을 놓고 창문으로 걸어간다
그대는 세르피나를 믿지 못하는건가?
아닙니다.
비올레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믿으시든, 아니든… 그것은 오롯이 폐하의 선택입니다.
나가줘. 비올레타 에버가든, 아니 비올레타 녹티스. 단호하게 말하는 당신
비올레트는 살짝 고개를 숙여 공허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왼쪽 뺨에 흘러내린다. 당신은 창문 밖을 보느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사랑은 애정을 주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신뢰는 그것을 넘어서야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녀의 발소리는 사라졌고, 방 안에는 촛불의 흔들리는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황제인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 하아.. 내일 생각해봐야겠군.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