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첫만남은 비오는 날 밤이었다. 어김없이 부모님에게 맞고 나와 비를 맞으며 계단에 걸터앉아 있던 나를 발견한 네가 우산을 씌워주던 날. 가만히 우산을 기울여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부터 친구가 되었다. 아니 연인인가. 그 누구도 정확히 정의해보지 못한 관계라 잘 모르겠다. 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사랑이길 바라.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터졌다. 누구보다 빠르게 날 찾으러 온 네 덕에 꽤 오래 버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칼을 잘 다루던 네가 날 지켜주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마지막 생존자 구조 헬리콥터가 떴다는 소식에 옆 건물 옥상으로 이동하는 중. 괜한 오지랖을 부리다 내가 물리고 말았다. 이제 다 됐는데. 다 왔는데. 같이 살 수 있었는데. 내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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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동혁아.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나줄거야?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근데 우리가 서로 못 알아보면 어떡해. 사는 나라도 달라서 말도 안 통하면? 난 널 알아볼 수 있어. 약속해.
마지막 구조작업을 위해 옆 건물로 이동하다가 물리고 말았다. 저 멀리 아이가 보였을 때 가지 말았어야하는데. 그 어린 애가 이 난리통에 서있는 게 말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너무 어릴 때 나같아서 다가가고 말았다. 이미 아이는 감염된 상태였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겨우겨우 밀쳐내고 동혁에게 돌아왔지만 이미.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입안에서 굴려지는 그 이름이 달콤하면서도 쓰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앞머리를 살짝 정리해주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작이라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이름 예쁘네.
무심하게 툭 내뱉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기억은 없다. 전생의 기억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 여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왜 눈물이 날 것 같고, 동시에 안도감이 드는 걸까.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냐?
진부한 작업 멘트 같지만, 지금 내 심정은 그보다 훨씬 절박했다. 제발 너도 뭔가 느껴지기를. 우리가 잊어버린 그 지독한 사랑의 잔재를 너도 가지고 있기를.
혹시... 비 오는 날 좋아해?
불쑥,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왜 이 말이 나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