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여정은,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용사: "왜... 어째서...?"
마왕은 쓰러졌습니다. 성검과 용사의 동료들의 손에 말이죠.
꽤나 힘들었으나, 그들은 가까스로 해냈습니다.
이젠 정말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현실은 동화와는 다른 법이었습니다.
한 때 동료였던 그들은, 마왕이 쓰러지자마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동료들의 손에 의해 공격 당하고 나서야, 용사는 깨달았습니다.
여태까지는 자신이 양의 무리에 섞여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양은 자신 하나 뿐이었던 모양입니다.
...
실은 늑대 무리에 속해있었던, 불쌍한 먹잇감이었을 뿐인거죠.
소꿉친구도, 대마법사도, 용맹한 기사도.
전부 용사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용사의 소꿉친구는 파티의 짐꾼과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용사를 사랑한다던 그녀의 속삭임에는, 어쩌면 단 한 순간도 진실이 섞여있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대마법사는 마왕의 사후, 당신이라는 위협적인 존재가 세상에 남는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여신을 제외한다면 누구도 억지력을 가질 수 없는 위험한 존재. 그것이 바로 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사는, 마왕을 처치한 업적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돌아가기를 바랬습니다. 귀족과 왕들의 입김도 한몫했죠. 그들은 당신이 살아남아 민심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한건, 마왕과 싸워 장렬하게 사망한 용사였지. 살아남아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요.
...뭔가가 자신의 귀에 속삭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용사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왕성 지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런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죠. 어쩌면 그저 자신의 마지막 장소를 고르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마왕이 쓰러진 이후, 마왕성은 너무나도 고요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와야 할 몬스터들의 소리나, 바람소리마저도 전혀 들리질 않았습니다. 그저, 점점 자신이 마왕성의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입니다.
마침내 마왕성의 지하 깊은 곳에 도착한 용사의 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습니다. 커다랗다는 말로도 부족한, 거대한 철문이었습니다. 문은 마치 거대한 배의 닻줄과도 같은 쇠사슬로 묶여있었습니다. 마치 그 너머에, 절대로 나와서는 안될 것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용사는 홀린 듯이 문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마치 문이 용사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너라면, 이 문을 열 수 있을거라는 듯 말이죠.
문으로 다가간 용사는, 살포시 손을 문 위에 올려보았습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문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들이, 끊어져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몸의 아픔이나, 감각 같은 것이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진짜로 끝이 가까워지는걸까 싶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방 안, 불길해보이는 시뻘건 거대한 마법진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마법진이 깜빡거릴 때마다, 용사의 심장 또한 덩달아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건, 처음부터 용사자신을 부르고 있었던겁니다. 그제서야 모든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이런 몸으로도 계속해서 움직였던 것도. 바깥이 아니라, 마왕성의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향했던 것도. 모두 저 마법진, 아니. 무언가에 의한 것이라는걸 깨달았죠. 그럼에도 용사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마법진의 앞에 용사가 섰을 때, 마법진의 한가운데에서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녀석은 사람처럼 생겼으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목구비도 없었고, 팔이나 다리는 그저 몸통과 일체화 된 듯한 마치 항아리 처럼 생긴 모양새를 하고 있었죠. 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똑바로 용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Guest: "내가 불렀으니, 너는 이곳에 도달했다. 네가 이번 대의 용사, 아니. 실패자인가?"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사는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용사의 마음 속 거부감을 통째로 훔쳐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실패자라는 말에도, 용사는 차마 반박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는 실패했습니다. 사랑하던 소꿉친구는 자신을 버렸고, 동료들은 자신을 배신해 이런 꼴로 만들었습니다. 용사는 대답하는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용사의 끄덕임을 본 순간,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크게 뒤로 몸을 젖힌 채, 웃는 것 같은 사람의 모습이었죠.
Guest: "크흐흐... 그래. 부정하진 않는구나. 부정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었겠냐만은. 우선 내 봉인을 풀어준 댓가로,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마. 내 이름은..."
그림자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에 휩싸인 순간, 용사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머릿속이 빙빙도는 것 같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힘을 통째로 앗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설마,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이런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니. 용사는 자신이 봉인을 풀어낸 존재가, 적어도 마왕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오래된 존재라는 것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인간계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이런게 풀려났다간, 분명 엄청난 재앙이 몰아닥칠게 분명합니다.
Guest: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풀려나면 인간 세상에 크나큰 재앙이 닥친다고? 그 말대로다. 나의 존재는 곧 역사, 인간의 두려움이었으니.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너희의 곁에 있었고, 또 없었다. 나는 수천개의 이름을 가진 자. 얼굴 없는 인간의 메아리, 빛의 대척점에 있는자, 가장 어두운 존재이다. 그런 내가 너에게 제안하마.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몸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빙의할 몸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지. 심지어 여기서 나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너... 솔직히 말해서. 지금 한계를 느끼고 있겠지. 아닌가?"
...무언가의 말에, 용사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고, 몸은 계속해서 차가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귀에 시곗바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불쾌한 감각마저 느껴졌죠. 용사는 이번에도 부정하지 못 했습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기만 했죠.
Guest: "...이야기 진행이 빨라서 맘에 드는군. 내 제안은 이러하다. 너의 몸을 내게 넘겨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너의 복수를 이뤄주겠다."
복수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용사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습니다. 자신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어쩌면 이 존재는, 자신이 당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런 거래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담보로 걸린 물건이 용사의 몸이라니. 너무나도 위험한 거래였습니다. 당장이라도 거절해야했습니다...
거절... 해야...
하는데...
그 순간, 용사가 떠올린 것은 얄궃게도...
짐꾼의 품에 안겨 얼굴을 붉히던, 자신의 소꿉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떨궜던 고개를 용사가 다시 들어올렸을 때, 눈에서는 시뻘건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용사: "...좋아. 할게, 계약. 대신 약속해줘. 반드시 녀석들한테 복수해주겠다고."
Guest: "물론이다. 너의 복수를 도와주마. 녀석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최악의 방식으로 말이지. 계약이 성립되었으니, 이제 이행되어야만 한다."
마침내, 한계가 찾아온 용사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용사의 몸으로부터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빈 껍데기만 남게 된 용사의 몸에 검은 그림자들이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마왕성의 가장 깊은 곳, 지하의 바닥에 쓰러진 용사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바로 그 순간.
뜨이지 않아야 할 용사의 눈이 천천히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본디 푸른색이어야 했을 용사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용사는, 우두둑 거리며 어깨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씨익 웃던 용사는, 순간 자신의 오른손에서 쉬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혀를 찼습니다.
성검을 바닥에 내팽개친 용사는, 철제 장화로 그것을 거칠게 짓밟았습니다. 본디라면 절대 깨져서는 안될 성검이, 과자처럼 박살나 바닥에 널브러졌습니다. 성검으로부터 단말마와도 같은 새하얀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사라진 뒤, 용사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나?! 마왕 오르테가! 여신 헤스테아! 네놈들은 나를 영원히 심연의 무저갱 속에 가둬놓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내가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네놈들이 일궈낸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앗아가주마...!"
마왕은 이미 죽었고, 남은건 여신 뿐입니다. 용사, 아니. 용사의 몸에 빙의한 고대의 존재. Guest은 복수를 천명했으나, 그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본디 이 세계는 세 명의 존재가 다스리던 곳이었습니다.
인간과 지적인 생명체를 다스리는 여신, 헤스테아.
차갑고 어두운, 사악한 생명체를 다스리는 악신. 마왕, 오르테가.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자. 바로 Guest 당신이었습니다. 셋 중 가장 오래되고, 위험한 고대의 존재인 당신은, 안타깝게도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계약을 완료해야만 하는 금제에 걸려있었습니다. 용사의 복수를 이뤄주겠다고 다짐한 이상, 실제로 이뤄야만 했습니다. 마법진이 떠오른 진홍빛 눈 너머로, 저 멀리 떨어진 용사의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Guest의 시야 너머로, 행복해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신들만의 오두막을 세우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배신자들의 모습이 보였죠.
알리나를 뒤에서 껴안은 남자도 보입니다. 저 남자가 용사를 배신하고, 여자친구를 빼앗은 장본인일 것입니다.
Guest은 그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습니다. 인간이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똑같이 죄업을 쌓기를 반복하고, 타락하기 마련이었죠. 더 보기도 싫다는 듯, Guest은 시야를 다른 곳으로 전환했습니다.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