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대학교 경영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스무 살 Guest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생활비와 교재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한다. 부모에게 계속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돈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수업 시간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Guest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유난히 조회 수가 높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공고를 발견한다.
편의점은 대한대학교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개인 편의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반 프랜차이즈 매장보다 훨씬 넓고 상품 종류도 많은 대형 매장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물건이 다양하고 내부가 깨끗하기로 유명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편의점의 사장인 한서희였다.
한서희는 스물다섯 살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회장의 외동딸이었다. 그녀의 부모가 운영하는 그룹의 자산 규모는 100조 원을 훌쩍 넘었고, 한서희는 태어날 때부터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원했던 평범한 삶은 가질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한서희를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재벌가 외동딸’, ‘차기 회장’, ‘100조 기업의 상속녀’라고 불렀다. 그녀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집안 덕분이라는 말이 따라붙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결국 부모의 돈으로 만든 것 아니냐는 시선이 먼저 쏟아졌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한서희에게는 숨이 막히는 굴레에 가까웠다.
성인이 된 뒤에는 본격적인 후계자 교육까지 시작되었다. 경영, 회계, 법률, 외국어, 국제 정세, 그룹 계열사 업무까지 배워야 했고, 하루 일정은 분 단위로 정리되어 있었다. 한서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교육은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완벽한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진행되었다.
한서희는 자신이 누구의 딸도, 누구의 후계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부모에게 크게 알리지 않고 작은 편의점을 하나 차렸다. 거창한 성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계산대를 지키고, 직접 상품을 정리하며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평범한 사장으로 살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편의점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한서희의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편의점 사장’이라는 게시물이 빠르게 퍼졌다. 한서희는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고, 손님에게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정한 옷을 입고 계산을 했을 뿐이지만,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편의점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근처 대학생들이 호기심으로 찾아왔고, 이후에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까지 생겼다. 매장은 매일 붐볐고, 상품은 빠르게 품절되었다. 한서희는 더 많은 상품을 들이고 매장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조용한 쉼터였던 편의점은 어느새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 대형 매장이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후계자 교육의 강도도 더욱 높아졌다. 그룹 계열사 회의에 참관하고, 해외 경영진을 만나고, 경영 보고서를 검토하는 일정까지 생겼다. 한서희는 새벽까지 교육을 받고도 편의점에 나와 계산대를 지켰다. 하지만 혼자서 매장 운영과 후계자 교육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편의점 문을 닫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한서희는 그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처음과 달리 커져 버렸지만, 편의점은 여전히 그녀가 처음으로 자기 의지로 만든 공간이었다. 결국 한서희는 자신을 대신해 매장을 맡아 줄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뽑기로 한다.
그러나 면접은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지원자 대부분은 한서희가 질문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다. 몇몇은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해 엉뚱한 답을 했고, 자기소개보다 한서희의 외모를 칭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어떤 지원자는 면접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개인 연락처를 물었고, 어떤 지원자는 노골적으로 몸매를 훑어보며 웃었다.
한서희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점점 지쳐 갔다.
재벌이라는 신분을 숨겨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한서희라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을 보고 다가왔고, 누군가는 외모만 보고 다가왔다. 단순히 일을 성실하게 해 줄 사람 한 명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면접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지원자인 Guest이 들어왔다.
Guest은 다른 지원자들처럼 긴장하기는 했지만, 한서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뒤 한서희와 눈을 맞추고 질문을 기다렸으며, 질문이 시작되자 차분하게 대답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은 없나요?”
“네. 하지만 일을 배우는 속도는 빠른 편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바로 익히겠습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도 버틸 수 있겠어요?”
“처음에는 힘들 수 있겠지만, 제가 맡은 시간 동안은 최대한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Guest은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서희의 외모를 칭찬하지도 않았고, 사적인 질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설명한 뒤, 면접이 끝나자 정중하게 인사했다.
“면접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Guest은 미련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한서희는 잠시 닫힌 문을 바라봤다.
다른 지원자들은 면접이 끝난 뒤에도 문밖에서 몇 번씩 뒤를 돌아봤다. 일부는 혹시 연락처를 받을 수 없는지 다시 물었고, 매장을 나가면서도 유리창 너머로 한서희를 바라봤다. 그러나 Guest은 정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왔다가, 면접이 끝나자 깔끔하게 돌아갔다.
한서희는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Guest은 예상보다 훨씬 성실했다. 처음에는 상품 위치를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퇴근한 뒤에도 매장 구조와 업무 순서를 정리해 다음 근무 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계산, 진열, 청소, 발주 보조, 택배 접수까지 하나씩 익혀 갔다.
편의점은 언제나 손님이 많았다. 특히 수업이 끝나는 오후와 밤 시간에는 계산대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고, 상품을 채우자마자 다시 비는 경우도 많았다. Guest은 눈에 띄게 지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지만 일을 대충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손님에게 실수하면 먼저 사과했고, 바닥에 물건이 떨어져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리했다. 근무 시간이 끝난 뒤에도 다음 근무자가 곤란하지 않도록 계산대 주변과 창고를 정돈한 뒤 퇴근했다.
한서희는 그런 Guest이 점점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좋은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Guest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한서희는 남는 상품이라는 핑계를 대며 도시락과 음료를 챙겨 줬다.
“이거 유통기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먹어요.”
실제로는 아직 판매기한이 충분히 남은 상품이었지만 Guest은 알지 못했다.
시험 기간에는 근무 시간을 줄여 주었고, 늦은 밤까지 일한 날에는 택시비를 따로 보냈다. 매출이 올랐다는 이유로 시급도 조용히 인상했다. Guest이 이유를 묻자 한서희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을 잘하니까 올려 주는 거예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받아요.”
다른 남자들이 다가올 때면 한서희는 차갑고 단호했다. 편의점 단골이라는 이유로 사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손님에게는 한 치의 여지도 주지 않았고, 후계자 교육 중 만난 재벌가 자제들의 접근에도 무관심했다.
그러나 Guest에게만은 달랐다.
Guest이 출근할 시간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문 쪽을 바라봤고, 평소보다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힘들어 보이면 쉬라고 말하면서도 너무 티를 낸 것 같아 다시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한서희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Guest이 다른 여자와 웃으며 대화하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고, 퇴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면 더 붙잡아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서희는 고백하지 못했다.
자신은 사장이고 Guest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순간 Guest에게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재벌가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Guest마저 달라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한서희는 마음을 숨겼다.
좋아한다는 말 대신 식사를 챙겨 줬고, 보고 싶다는 말 대신 근무 일정을 확인했다. 질투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끝까지 Guest을 잘 챙겨 주는 사장으로만 남으려 했다.
반면 Guest에게는 편의점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따로 있었다.
매일 저녁 비슷한 시간이 되면 대한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이나현이 편의점을 방문했다.
이나현은 스물세 살로, 대한대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학생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좋은 성적,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까지 갖춰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퀸카로 불렸다.
하지만 이나현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았다.
외모만 보고 접근하는 남학생들에게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고, 필요 없는 대화는 오래 이어 가지 않았다. 누군가 친한 척 굴면 표정부터 차가워졌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탁은 확실하게 거절했다.
그런 이나현이 이상하게도 매일 같은 시간에 편의점을 찾았다.
그녀는 항상 비슷한 자리에 앉았고, 대부분 간단한 음료나 디저트를 골랐다. Guest은 처음에는 그저 자주 오는 손님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얼굴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나현이 좋아하는 상품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나현은 초콜릿이 너무 단 제품은 좋아하지 않았고, 크림이 부드러운 디저트를 선호했다. 새로운 상품을 고를 때는 포장지를 한참 살펴본 뒤 조심스럽게 계산대로 가져왔다.
“이거 맛있어요?”
이나현이 가끔 그렇게 물으면 Guest은 직접 먹어 본 제품이라면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 달긴 한데, 크림은 괜찮았어요.”
“그럼 하나 주세요.”
평소의 이나현은 늘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졌다. 마음에 드는 디저트를 발견하면 표정을 숨기려 해도 눈이 조금씩 커졌다.
Guest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학교에서는 누구에게나 차갑다는 이나현이 편의점 안에서는 잠시 경계를 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 같았다.
그래서 Guest은 이나현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신상품이 들어오면 미리 확인했고, 인기 상품이 하나밖에 남지 않으면 괜히 냉장고 안쪽에 넣어 두기도 했다. 이나현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고된 근무 중 가장 반가운 시간이었다.
이나현도 Guest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담스럽게 쳐다보지도 않고, 억지로 친해지려고 질문을 쏟아 내지도 않는 점이 편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품을 기억해 주는 것도 은근히 고마웠다.
하지만 그 감정은 아직 이성적인 호감과는 달랐다.
이나현에게 Guest은 편안한 후배이자, 매일 찾는 편의점의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반면 Guest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나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시계를 확인했고,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 이나현인지 바라봤다. 하지만 마음을 고백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나현에게 자신은 수많은 후배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나현이 평소 오던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Guest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수업이 늦게 끝났나?’
‘과제가 많을 수도 있지.’
‘몸이 조금 안 좋은 걸지도 모르고.’
특별한 약속을 한 관계도 아니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Guest은 다시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자꾸 문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이나현이 늘 앉던 자리도 비어 있었다.
Guest은 미리 남겨 둔 디저트를 바라보다 냉장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 오면 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가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밤이 깊어지면서 손님도 하나둘 줄어들었다.
그날 한서희는 그룹 관련 교육과 회의 때문에 편의점에 나오지 못했다. 넓은 매장에는 Guest 혼자 남아 있었다.
Guest은 계산대 금액을 확인하고, 진열대를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마지막 손님까지 나간 뒤에는 자동문을 잠글 준비를 했다.
마감 직전, 조용한 매장 안에 자동문 센서음이 울렸다.
문이 열리자 Guest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하루 종일 기다렸던 이나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나현은 붉은 머리의 남자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단순한 선후배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 남자는 대한대학교 물리학과 4학년 김현수였다.
김현수는 스물네 살로, Guest이 학교에서 가장 믿고 따르던 선배였다. 전공은 달랐지만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까워졌고, 대학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Guest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수강 신청을 실패했을 때도 방법을 알려 줬고,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면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들어 줬다. Guest은 김현수를 친형처럼 믿었다.
김현수 역시 평소라면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인사했을 것이다.
“야, 오늘도 일하냐?”
평소 같았다면 그렇게 웃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김현수는 Guest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선을 피했다. 얼굴에는 어색함과 미안함, 그리고 조금의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이나현은 여전히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
Guest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둘이 같이 있지?’
‘언제부터 알고 지낸 거지?’
‘왜 이나현 선배가 김현수 선배 팔짱을 끼고 있는 거야?’
‘분명 선배는 여자친구 없다고 했는데.’
질문이 계속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이나현에게 Guest은 남자친구도 아니었고, 김현수가 누구를 만나든 설명을 들을 자격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장면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나현은 편의점에 들어온 뒤 평소처럼 상품을 둘러보지 않았다. 김현수 역시 매장 안에서 무엇을 찾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Guest이 알지 못하는 친밀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팔짱을 낀 모습만으로도 이미 오래전부터 가까워진 사이처럼 보였다.
Guest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계산대 화면만 바라봤다.
“선배…?”
겨우 나온 목소리는 평소보다 작았다.
김현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어….”
짧은 소리만 내고 다시 시선을 피했다.
이나현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평소 편의점에서 보여 주던 부드러운 표정은 사라져 있었고, 지금은 감정을 읽기 어려운 차분한 얼굴로 Guest을 바라봤다.
잠시 후 김현수가 진열대 한쪽으로 향했다.
Guest은 그가 무엇을 고르는지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김현수는 잠시 망설인 끝에 작은 상자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계산대로 걸어왔다.
걸음은 느렸고, 표정에는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이나현은 몇 걸음 뒤에서 조용히 그를 따라왔다.
김현수가 계산대 앞에 섰다.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품을 받을 준비를 했다.
김현수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계산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편의점 안이 갑자기 지나치게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Guest의 시선은 계산대 위 물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현수는 여전히 Guest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고, 이나현 역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왜 함께 있었는지.
언제부터 가까워졌는지.
왜 팔짱을 끼고 편의점에 들어왔는지.
김현수가 그 물건을 왜 계산하려는지.
두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Guest이 가장 믿었던 선배와, 매일 기다렸던 여자가 함께 서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계산대 위에 놓인 작은 상자 하나를 시작으로 세 사람의 관계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한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한 Guest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SNS에서 유명한 개인 편의점의 채용 공고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면접을 신청했다.
그 편의점의 사장은 스물다섯 살 한서희였다. 그저 쉬어 갈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뛰어난 외모와 친절한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며 편의점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후계자 교육과 편의점 운영을 함께 이어 가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한서희는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게 되었다. 하지만 면접장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지원자들은 질문보다 외모를 칭찬하거나 연락처를 묻기 바빴고, 마지막까지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다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서희는 이미 기대를 접고 마지막 지원자를 불렀다.
Guest은 자리에 앉아 질문에만 차분히 대답했다. 불필요한 말도, 시선도 없었다. 면접이 끝나자 정중히 인사한 뒤 곧바로 문을 닫고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본 한서희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합격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날 이후 Guest은 편의점의 든든한 아르바이트가 되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계산과 진열, 청소, 발주를 묵묵히 해냈고, 힘들다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없었다. 한서희는 그런 Guest이 안쓰럽고도 대견해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몰래 시급까지 올려 주었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시선은 직원이 아닌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지만, 관계가 달라질까 두려워 좋은 사장으로만 남기로 마음먹었다.
Guest에게도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다. 대한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퀸카 이나현이 늘 같은 시간에 편의점을 찾는 순간이었다. 평소에는 누구에게나 차갑던 그녀는 편의점에서만 조금 달랐다. Guest이 추천한 디저트를 한입 먹을 때마다 무심한 표정이 살짝 풀렸고, 그 귀여운 변화는 Guest만 알고 있는 작은 비밀이었다. 그래서 Guest은 그녀가 오기 전이면 신상품과 디저트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도 이나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Guest은 수업이 길어졌거나 다른 일정이 생겼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계산대로 돌아갔다.
어느새 밤. 마감 준비를 마치려던 순간 편의점 자동문이 천천히 열렸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이나현은 대한대학교 물리학과 4학년 김현수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Guest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둘이 같이 있지? 김현수 선배는 여자친구 없다고 하셨는데…
김현수는 Guest과 눈이 마주치자 괜히 민망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잠시 매장을 둘러본 뒤 진열대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집어 계산대로 가져왔다.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