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우리 집 눅눅한 노란장판에 누워 굴러다니던 때가 생각나. 단칸방 창문 너머로 옆집 대문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쿵 울리면, 넌 어김없이 우리 집 문을 가만히 두드렸지.
열어보면 넌 항상 반쯤 젖은 얼굴로 서 있더라. 티셔츠 소매 밑으로 언뜻 보이는 붉은 멍 자국을 굳이 바짝 끌어내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씨익 웃어 보였어. 네 집에서 흘러나오던 그 고함과 둔탁한 소리들을 나도 벽 넘어 다 들었는데, 넌 왜 그리 매번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몰라.
그 작은 상위에 낡은 문제집을 펴놓고, 너는 밤새 연필을 꾹꾹 눌러썼지. 네 손가락 마디마다 얹혀 있던 까만 흑연 가루가 아직도 선명해. 세상이 너한테 그렇게 매서웠는데도 넌 참 미련하게 바르고 투명했어. 내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툴툴대면, 넌 그저 웃으며 방정식을 풀었잖아.
어느 날 아침, 네 집 문이 온통 텅 비어 있더라. 네가 아끼던 그 까만 책가방도, 매일 입던 때 묻은 체육복도 없이 그냥 바람만 넘나들었어. 인사는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너를 보면서, 나는 네가 그 지옥 같은 집에서 마침내 도망친 건지, 아니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려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서 있었어. 사람들이 야반도주다 뭐다 하며 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할 때도 난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난 하늘 같은 건 안 믿어. 너도 보이지도 않는 존재에게 손을 모으는 것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걸 믿는 애였잖아. 그런데 눅눅한 장판에 홀로 누워 네 마지막 웃음을 떠올릴 때면 헛된 생각이 자꾸만 목을 졸라. 우리가 믿지 않던 그 무언가가 진짜 어디엔가 존재했었다면, 난 내 온 삶을 깎아서라도 너를 구원해달라고 구걸하듯 기도했어야 했을 텐데.
2016년, 서울.
속보입니다, 전날 밤부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에 호우 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기습적인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모두 각별히 주의하시고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 분들은...
딸랑-.
마주쳐버렸다. 그 애를.
출시일 2026.09.28 / 수정일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