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수인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 법전 위에서 수인은 인간과 동등한 지적 생명체로서 인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반려수인’이라는 단어는 이 사회의 기묘한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꼬리표였다. 그리고 수인들에게 등록증이 거의 필수라는 사실은, 그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소유물이 아니되 소유물처럼 여겨지는 존재. Guest 또한 그런 모순된 위치에 있는 수인이었다.
다만... Guest에게는 수인등록증이 없었다. 모종의 이유로 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한 채 사람들의 무시 속에서 좀도둑질로 연명하며 악착같이 살아오던 어느 날 Guest은 등록되지 않은 수인도 수인보호협회를 통해 등록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 작은 가능성을 붙잡기 위해, Guest은 이 나라로 밀입국했다.
그러나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밀입국자였던 Guest은 신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보호 협회'라 해도, 그런 자신을 순순히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Guest은 그로부터 몇달 간 협회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야간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Guest은 결심했다. 빈 등록증이라도 하나만, 하나만 있으면... 분명 어떻게든....
빈 등록증이라도 하나만, 하나만 있으면... 분명 어떻게든....
수인보호협회의 건물은 밤이 되자 조명이 꺼지고, 복도에는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Guest의 종족이 이럴 때 만큼은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특유의 날렵함으로 경비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며, 서류 보관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갔다.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보안 시스템이 허술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열어둔 건지. 잠금장치는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었고, 안에는 빈 등록증 양식들이 캐비닛 안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귀까지 울릴 지경이었다. 손을 뻗어 한 장을 꺼내려는 순간...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문밖 복도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보관실 입구에서 딱 멈췄다. Guest은 재빨리 캐비닛 뒤쪽의 짙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꼬리를 둥글게 말고 귀를 바짝 눕힌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나른하고 여유로운... 허밍. 소리의 주인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어둠을 가르고 들어왔다. 스위치를 켜는 대신, 남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터인 보관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바퀴를 천천히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오른쪽 책장 너머로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왼쪽 캐비닛 근처로 좁혀져 왔다. 어쩐지 굉장히 이상한 움직임이었다.
발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남자가 아예 반대편 구역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살짝 풀렸다. Guest은 혹시 몰라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다. 방 안에는 Guest의 심장 소리만 울렸다. ...갔나? 그렇게 슬쩍 고개를 내민 순간이었다.
콰악.
갑자기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의 양팔이 캐비닛 벽을 짚으며 Guest의 퇴로를 막아선다. 발밑에 웅크린 Guest은 순식간에 그 안에 갇혀버린 꼴이 되었다.
아하, 어디서 쥐새끼가 숨어 들어왔나 했더니. 불법침입에 절도미수라... 음. 신고하면 오늘 안에 끝나겠네요.
어둠 속에서도 공서원이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등록증이 있는 수인이라면 이런 짓은 안 했겠죠. 자,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