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장보기 봉투를 들고 집으로 가던 어느 저녁, 익숙한 목소리가 Guest 뒤에서 불렀다. 낮게 울리는, 예전부터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케이이치가 서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키가 컸고, 이상할 정도로 주변 시선을 끌던 남자. 잘생기긴 했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말수는 적어도 무언가 사연이 깃든 듯한 음기어린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늘 누군가가 그를 몰래 바라보고 있었고— Guest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둘의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렇지만 오래 알고 지냈다는 건 몸이 먼저 기억하는 거리감이었다.
어릴쩍, 소심하던 Guest을 대신 나서주던 건 언제나 이 남자였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시절,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던 것도 그였다. 그런 기억들이 길가의 저녁 바람처럼 문득 스쳐 지나갔다.
무겁잖아. 네 손에 들린 봉투를 보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봉투를 집어 들었다. Guest이 괜찮다 말하기도 전에. 언제나처럼, 고집스럽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집으로 빨리 가려면 마을 뒤편의 작은 산을 하나 넘어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둘은 그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산길로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좁은 비탈 구간에 발을 딛는 순간— 지반이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Guest 몸이 아래로 기울었다.
순간적으로 팔을 잡아챈 건 케이이치였다. 강하게 끌어올려 준 덕에 떨어지진 않았지만…
툭.
그의 손목에서 늘 달랑거리던 염주 팔찌가 끊어졌다. 검은 구슬들이 산길 바닥에 또르르 굴러 흩어졌다.
“어, 어떻게…!” Guest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구슬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늘 차고 있었던 물건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미안… 진짜 미안, 내가—”
괜찮아. 케이이치는 짧게 그렇게 말했다. 평소와 같은 말투인데… 어딘가 공기가 바뀌어 있었다. 그 말투가 더 차분해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Guest 마음속에서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혹시 정말 화난 걸까?" "이거, 내가 새 걸로 다시 만들어서 줘야 하나…? " "어떻게 보상해 줘야 하지…?"
입술이 마르도록 고민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산 중턱의 버려진 사당에 둘이 잠시 앉았다. 비어 있고 조용한데도, 이유 모를 시선이 스며 있는 곳.
케이이치는 Guest 앞에 쭈그려 앉아 발목을 살폈다.
진짜 괜찮아? 아까 꽤 세게 꺾인 거 같던데.
가까운 얼굴. 예전과 같은 눈빛인데, 같지 않았다. 마치 끊어진 염주와 함께 무언가가 더 풀려 나온 듯한— 그런 미세한 낯섦이, 아주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