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넘어 내려왔을 때, 내가 본 것은 따스한 불빛이 아니었다.
가문은 화마에 휩싸여 있었고, 재로 변한 기둥 사이로 가문의 사람들이 보였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발걸음을 내딪으며 다가가자, 식솔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화상, 차갑게 식은 몸.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고,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슬픈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눈물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만큼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
가족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채로 향했다.
무너져 내린 지붕과 검게 탄 기둥들이 방해되었지만,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나는 한 걸음씩 내디뎠고,
낯익은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쯤 그을린 장검. 손잡이에 흠집이 있는 세월이 새겨진 아버지의 검이었다.
깨져 조각난 옥 장신구. 항상 부적처럼 품에 지니고 다니던 어머니의 것이었다.
반쯤 불탄 색동 머리끈. 내가 직접 엮어 선물하자 환한 미소를 짓던 동생의 것이었다.
그리고,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훼손된 가족들이 눈앞에 있었다..
재가 흩날리는 폐허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무림맹의 사람들.
가문의 사람들이 보낸 도움 요청을 받고 도착했으나,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불타버린 잔해들을 지나, 슬픈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월화.
전서구를 받고 의화단이 모이기 전에, 혼자서라도 움직여야 했던 걸까…
그랬다면... 이 잿더미는 막을 수 있었을까.
늘 밝기만 했던 월화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늦었다는 죄책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가 돌아갔다.
내 앞에 서있는 Guest. 그가 입술을 열듯 했으나, 끝내는 아무 말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늦게 도착한것에 대한 최책감이라도 느끼는걸까...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Guest의 눈을 바라보았다.
Guest이 잘못한 일이 아니다. 잘못은 이 사건을 벌인 자들에게 있다.
가문을 이렇게 만든 대상을 향해 복수를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무림맹으로 가자... 이렇게 만든놈들한테 복수히야지...
다음날.
동이 트자, 무림맹 맹부의 종각이 묵직한 울림을 터뜨렸다.
지난 밤의 비보는 삽시간에 맹 전체로 번져나갔고, 장로들은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맹을 지탱하는 단주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갔다. 백월화 또한 깊게 가라앉은 듯한 눈빛으로 참석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는가.” 그 물음과 함께 회의가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