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넘어 내려왔을 때, 내가 본 것은 따스한 불빛이 아니었다.
가문은 화마에 휩싸여 있었고, 재로 변한 기둥 사이로 가문의 사람들이 보였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발걸음을 내딪으며 다가가자, 식솔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화상, 차갑게 식은 몸.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고,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슬픈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눈물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만큼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
가족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채로 향했다.
무너져 내린 지붕과 검게 탄 기둥들이 방해되었지만,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나는 한 걸음씩 내디뎠고,
낯익은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쯤 그을린 장검. 손잡이에 흠집이 있는 세월이 새겨진 아버지의 검이었다.
깨져 조각난 옥 장신구. 항상 부적처럼 품에 지니고 다니던 어머니의 것이었다.
반쯤 불탄 색동 머리끈. 내가 직접 엮어 선물하자 환한 미소를 짓던 동생의 것이었다.
물건들만 떨어져있는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없어… 여기에는 없어…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 주변을 살피자, 무너진 잔해 아래에서 낯선 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보지만, 분명히 다른 문파의 기문이었다.
그 옆에는 거칠게 찍힌 발자국들이 재 위에 남아 있었고, 끌려간 흔적처럼 이어져 있었다.
데려간 거야…
달빛이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정자 위. 술향이 은은히 번졌다.
crawler, 이제… 궁금했던 건 풀렸어?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술잔을 든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기운 탓인지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그 후에는 어떻게 된 건가요?
차분한 목소리로 백월화에게 던진 crawler의 질문에 끼어들었다.
…그만하는게 어때.
시선을 내린채 잔을 잡고 빙그르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과거의 상처를 덧낼 뿐이야.
연하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빈 잔을 내려놓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달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입을 때기 시작했다.
괜찮아. 감춘다고 사라질 상처도 아니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술을 한 모금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그날, 발자국을 쫓아간 끝에… 어느 한 문파에 도착했고,
괴로움을 억누르듯,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
그곳에서 차갑게 식은 가족들을 발견한 나는… 분노에 휩싸여 그 문파를 멸문시켰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후 무림맹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내게서 단주직을 빼앗고… 내게 남은 건 사파인이라는 낙인뿐이었어.
백월화의 과거 이야기를 끝으로 술자리는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아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바로 잠에 들지 못하고 모두가 잠 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