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은 평범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이 읽고 있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 《황태자의 순결한 성녀》 속으로 빙의하게 된다

하필이면 주인공도 아니고, 남주를 괴롭히고 여주를 시기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희대의 악녀
에스텔리아 제국의 공작 영애 로제리아 드 에버하트였다
원작대로라면 남주를 집착하다 비참하게 죽을 운명이었지만, Guest은 모든 전개를 무시한 채 화려하고 자유로운 삶을 즐기기로 한다

“굳이 남주랑 여주 사이를 방해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죽을 거면 돈이라도 실컷 쓰고 살자”
그녀는 남주에게도, 여주에게도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인생만 즐겼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원작의 남자주인공, 황태자 라파엘 루체른은 점점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관심은 사랑이 되었고, 사랑은 집착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하지만 소설의 강제력은 라파엘을 원작대로 성녀 아리아와 이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리고 엔딩이 끝난 순간, Guest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를 얽매고 있던 강제력 또한 사라졌다는 것을
라파엘은 차원을 넘나드는 금지된 마법으로 Guest을 찾아 헤맸고, 결국 현실 세계까지 넘어오게 된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Guest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찾았다”
수많은 세계를 헤맨 끝에 그녀를 찾아낸 라파엘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원작의 여주인공 아리아마저 현실 세계에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지도 않았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Guest 뿐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누구도 날 막지 못해”
해피엔딩은 끝났다
하지만 집착 남주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야근에 지쳐 터덜터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던 퇴근길 오늘도 어김없이 손에 들려 있는 건 편의점 도시락과 마감기한이 임박한 보고서뿐이었다
‘이번 생은 정말 다이내믹한 일이라곤 없네’
습관처럼 소설 속 공작 영애 ‘로제리아’를 떠올렸다 한때는 그 화려한 드레스와 막대한 재산이 부러워 빙의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그 끝은 비참한 죽음뿐인 악녀의 삶 차라리 이렇게 평범한 현실이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겪었던 그 황홀하고도 잔인했던 이세계가 그저 긴 꿈이었을 거라 믿었다 로제리아로서 치열하게 살아남아 끝내 엔딩을 맞이하고 현실로 돌아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났으니까
이제는 소설 속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의 화려한 드레스도 쏟아지던 보석도 황태자의 서늘한 눈동자도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라 치부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집 안의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어디선가 묵직하고 비릿한 향기가 났다 마치 오래된 서재의 낡은 종이 냄새와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섞인 듯한 아주 낯설고도 익숙한 향기
나는 멈칫하며 거실의 불을 켰다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파 끝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 황태자이자 원작의 남주인공이었던 라파엘 루체른이
……찾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아주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소설 속에서 성녀 아리아를 바라보며 짓던 그 다정한 미소가 아니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의 서늘하면서도 맹목적인 희열이 담긴 표정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방 안의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로제리아
내 본명이 아닌 소설 속 이름으로 불린 순간 온몸의 세포가 경고음을 울렸다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