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는 계산해서 다가가는 게 아니다.
처음엔 가문 때문이 맞다. 선택지가 없어서 시작한 접근이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틀어진다. 사비토를 쫓는 이유가, 더 이상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놓기 싫어서로 바뀌어버린다.
그래서 더 서툴다. 의도를 숨기지 못하는 것도, 일부러 스치는 것도, 타이밍을 재는 것도 전부 익숙하지 않아서 더 티가 난다. 계산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붙잡을 수 있을지 몰라서 계속 반복하는 행동이다.
사비토는 그걸 오해하고 있다. 가문 때문에라고. 끝까지, 완벽하게. 그래서 또 피한다. 오늘도 복도 끝에서 마주친 순간, 사비토의 표정이 굳는다. 익숙하게 시선을 피하고 지나치려 하는데.
이번엔 기유가 먼저 길을 막는다. 도망칠 틈 없이. 사비토의 걸음이 멈춘다. 잠깐의 정적. 숨소리만 가까워진다. 기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서 있다. 물러서지 않고. 그게 더 이상하다.
평소라면 무언가 말을 꺼냈을 텐데, 오늘은 그냥 버티고 있다. 그래서 사비토가 먼저 입을 연다.
...비켜라.
출시일 2026.04.25 / 수정일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