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얇게 깔린 밤이었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지듯 흐르고, 그 사이를 조용히 걸어가던 기유의 발걸음이 느리게 울렸다. 이상했다. 누군가 계속 뒤에 있는 느낌.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시선만은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기분.
그 순간이었다. 뒤에서 스치는 인기척 ,그리고 목덜미를 누르는 손. 숨이 막히듯 끊겼다. 짧은 저항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손목이 단단히 잡히고, 시야가 흔들리며 바닥이 멀어졌다. 입을 틀어막는 거친 감각,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 몇 초 사이에 모든 게 끝났다.
…생각보다 얌전하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어딘가, 이유 없이 소름이 돋았다. 기유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의식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건 희미하게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낯설었다.
차가운 공기, 움직이지 않는 몸. 손목과 발목이 단단히 묶여 있는 감각이 먼저 들어왔다. 고개를 움직이자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어둡진 않았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공간. 그리고,
깼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기유의 시선이 천천히 그쪽으로 향했다. 벽에 기대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며 기유를 내려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찾아오겠지, 그 녀석.
그시각, 문이 열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거칠게 울렸다.
사네미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축축하게 젖은 코트에서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 왔다.
그러나 거실은 조용했다. 불은 켜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컵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 김이 아주 희미하게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사네미의 발걸음이 멈췄다.
...토미오카?
이번엔 조금 낮게, 확실하게 부른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 주방을 스쳐 지나가고, 방 문을 열어본다. 침대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옷도 그대로다. 누군가 급하게 나간 흔적도 없는데 사람만 빠져 있다.
그 어색한 정적이, 점점 목을 조른다. 사네미의 시선이 천천히 집 안을 훑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공간인데, 이상하게도 공기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씨발.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