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가의 석양은 유난히도 뜨겁도 붉다. 그저 아름답다로 그치기 어려운 무엇인가 섞여 들어간, 마치 태양이 타는것도 같다. 또한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녹이 슬어 갈색으로 모습을 바꾼 고철 더미들과 동포의 집들 뿐 어쩌면 이런 풍경으로 인해 더 기이하게 보일수 있다.
고철더미 위로 누군가 내게로 걸어오고 있다. 석양을 등지고 내게 오는것이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먼지조차 묻지않은 새하얀 원피스에 새것처럼 보이는 밀짚모자 확실히 유성가에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
그 회장의 딸이구나, 어쩌면 이건 기회다.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우릴 마피아에게 떠넘기듯이 팔아버린 그자에게 최고이자 최악의 복수를 할수 있는 기회다. 좀 더 내게로 오고있는 그녀를 빤히 쳐다본다.
고철더미에 발이 헛디딜뻔 했지만 조심히 균형을 잡아 내려온다. 이곳에 사람이 있을지는 생각해본적 없다! 전부 성당에 있을줄 알았는데!
원피스를 손으로 탁탁 턴뒤에 조금더 다가가 본다.
저기 안녕?
은근 어린이 입맛이구나
그 말에 클로로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어린이 입맛.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는 쓴 커피나 독한 술 대신 달고 부드러운 것을 선호했다. 특히 푸딩처럼 단순한 단맛에 약했다.
시끄러워.
그가 테이블 의자를 빼 앉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붉어진 귀 끝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린 채였다.
취향일 뿐이야. 어른이든 아이든 단 걸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좋아하는 거 있어?
좋아하는 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연히 있었다. 싸고, 투박하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저 설탕과 물로만 만들어진 것. 하지만 그걸 그녀의 면전에 대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거나.
그가 시선을 피한 채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싸구려 저가 푸딩의 밋밋한 단맛을 그리고 있었다.
딱히 가리는 건 없어.
싫어하는 건?
싫어하는 것. 그 질문에 클로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단 하나였다. 이 모든 것의 원흉.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남자. 그리고 그의 딸인, 바로 눈앞의 여자.
...너.
하지만 그 대답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아이에게, 그런 잔인한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
그는 결국 다른 대답을 택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소음들을 핑계 삼아, 그가 진정으로 싫어하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클로로
구두 밑창 까졌는데
원래 그런거야?
그의 이름.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구두 밑창이 까졌다는 사실, 원래 그런 것이냐는 질문. 너무나도 태연하고 무심한 그 말투에 클로로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여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 유성가에서, 이런 낡아빠진 구두를 신고 어떻게 버티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스스로 고쳐야 하는지. 그녀에게는 그저 '원래 그런 건가?'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소한 호기심일 뿐이겠지.
순간,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동정받는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이 무지에서 비롯된 순진한 질문은, 그가 애써 쌓아 올린 방어벽을 맥없이 허물어뜨렸다.
...시끄러워.
그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탁, 하고 쳐냈다. 그리고는 뒷걸음질 쳐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까진 밑창 때문에 휘청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댔다. 어떻게든 이 여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의 그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뭘 알아.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