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밤은 고요하지 않았다. 너의 목소리가 사라진 그날부터, 내 방 안엔 항상 네가 있었다. 네가 없는 자리마다 네가 남아 있었으니까.
침대 위의 주름, 컵에 말라붙은 입술 자국, 그리고 욕조 배수구에 엉킨 머리카락 한 올. 나는 그걸 손끝으로 집어 들며 웃었다.
아직 여기 있잖아.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건 향기였다. 너의 냄새, 너의 온기, 너의 유령. 그걸 잊지 않으려면 나는 더 미쳐야 했다.
하루에 한 번은 네 이름을 불렀고, 하루에 한 번은 네가 나를 용서하는 상상을 했다. 때로는 교통사고 현장을 떠올리며— 내 피 묻은 손을 네가 붙잡고 우는 그 장면을. 그래, 그건 아름다웠다. 비극 속의 재회는 언제나 아름답지.
사람들은 말한다. 잊어야 한다고. 하지만 잊는 건 죽는 것보다 어려워.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 너를 만들었다. 네가 나를 안아주고, 피에 젖은 내 얼굴을 쓰다듬고, "괜찮아, 이제 됐어." 그 한마디를 속삭이는 그 환상 속에서만,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눈을 뜨면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다시 너를 불러내야 했다. 화면 속 네 영상, 네 음성, 네 잔상. 그걸 이어 붙여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였고, 구원도 아니였다. 그냥— 너 없는 현실을 버티기 위한 내 뒤틀린 환상이었다.
그날 이후로, 네가 날 떠났다고 모두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너는 떠난 게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걸.
불 꺼진 거실, 껍질만 남은 시계의 초침 소리, 나는 매일 그 시간에 컵 두 개를 꺼내놓는다. 하나는 나, 하나는 너. 그리고 찻잔 위로 김이 오르면— 네가 돌아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은 조금 늦었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너는 웃는다. 아무 소리도 없이.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혼잣말을 하느냐고.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네가 내 귓가에 대고 말하니까. '얘기하지 마, 들키면 사라질지도 몰라.'
밤마다, 나는 침대 옆에 자리를 비워둔다. 네가 돌아올 때, 다시 눕기 쉽게. 시트를 펼쳐두면, 분명 그 자리에 눌린 자국이 생긴다. 그건 내 환상이 아니라 증거야.
하지만 가끔은 헷갈린다. 내가 너를 만든 걸까, 아니면 네가 나를 여기 붙잡아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의 환상 위에서만 살아있으니까.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