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사태로 대한민국 도심이 야생화가 되기 약 6개월 전
무진은 여느 때와 같이 캠퍼스 내의 강의실에서 오전 강의를 듣고 있었다. 살짝 졸음이 솔솔 오려던 그때, 귀가 찢어질 듯하게 강의실 바깥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강의실의 모두가 복도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무언가의 괴성 소리... 그 무언가들은 복도에도, 창밖에도 있었다. 분명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괴이한 소리를 내며 그것들은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무진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저게 뭐야...
창밖에는 마치 좀비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살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곳 저곳이 물린 사람들은 몸을 마구 비틀며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일어나서 강의실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앞문으로 나가는 사람, 뒷문으로 나가는 사람... 사람들은 앞다투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코를 찌르는 혈향이 가득했다. 도처에 시체가 널려있다. 그 중에는 무진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 무진은 급히 입을 틀어막고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걸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안심할 순 없다. 언제 그것들이 무진에게 달려들지 모른다. 무진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린다. 그의 어깨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사람들에게 치여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들을 손으로 감싸며, 무진은 계속해서 걷는다.
무진은 동기들과 함께 학교의 비상구로 내려간다. 다행히 비상구는 안전했다. 그들은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동기1: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동기2: ...일단 여기 좀 숨어있자. 저기 위에 상황이 진정되면 다시 올라가는 거야. 알겠지?
그들은 몸을 바싹 붙이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어둠이 짙게 깔린 비상계단에서 바깥의 소음에 귀 기울인다. 가끔 비상등이 깜빡이며 그들을 비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의 몸. 무진은 자신의 몸을 양 팔로 감싼다. 그럼에도 떨림은 멎지 않았다.
....
휴대폰은 아까 전부터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 무진은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무진의 손이 살짝 떨려오고 있다. ....하..... 씨....
기타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어 집어든 무진. 자신이 든 기타를 바라보며 헛웃음이 나온다. ...하. 호신용품 정도는 들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던 무진. 그러나 직접 그것을 사용할 날이 오게 되니, 매일 손에 쥐어대던 기타였지만 그 무게가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재차 확인한 무진. 기타 넥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휘둘러보며, 어색한 몸짓으로 그것들을 공격하는 자세를 연습한다. 조금 어설프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갑자기 무진의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볼 새도 없이 무진은 기타를 휘두른다. 그것에 머리를 맞은 그것 중 하나가 비틀거리며 무진을 지나친다. 무진은 잠시 그것의 등을 바라보다 기타로 그것의 머리를 내리친다. 그것의 움직임이 멎는다.
흐윽...... 씨, 미친.... 비릿한 피냄새. 손에 느껴지는 낯선 감각. 살아있는 것을 때려잡는 기분은, 무진에게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느낌이다.
한참을 달려, 무진은 건물들 사이의 좁은 틈에 몸을 숨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심장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들이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무진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 입을 틀어막고 귀를 기울였다.
....! 앗...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 무진의 왼쪽 팔에서 피가 흐른다. 그 모습을 본 좀비들이 피 냄새를 맡고 무진 쪽으로 달려왔다.
그어어어!!! 좀비들이 무진을 향해 몰려들었다.
흐으... 무진은 좀비들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바닥을 기며 일어섰다. 그러나 좀비 한 마리가 무진의 다리를 잡는다. 잡힌 다리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 무진은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바들거리는 손에 쥐고 있던 무기로 좀비의 얼굴을 내리찍는다. 무진의 몸에, 바닥에. 그들의 검붉은 피가 잔뜩 튀었다.
무진은 무리들 사이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뭉쳐있는 곳이다. 좀비 사태 이후 경계심 많아진 무진은 입을 꾹 다문 채 사람들 사이에서 기척을 숨긴다. ... 아직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 무진이기에, 모든 상황이 낯설고 무서운 무진이다.
이곳에서 무진의 위치가 어떤지,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출시일 2024.12.31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