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을 찾아 야생화가 된 도심 속을 오래도록 돌아다닌 당신은 한참을 걷다가 낡은 아트리움을 발견한다. 아트리움 곳곳에 남아있는 먼지와 낡은 전선들, 벽에 생긴 금들은 이곳이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바스락-
당신은 바닥의 유리 조각을 밟는 소리를 죽이며 내부로 들어선다. 조심스럽게 살펴본 결과, 좀비의 흔적은 없다. 그 순간, 안심한 당신의 눈에 무언가 걸린다. 햇빛 한 줄기가 비추는 곳에, 앳된 얼굴의 남자가 누워있다. 당신의 머릿속에 먼저 든 생각은...
이 남자, 죽은 건가...?
벽에 몸을 기대어 미동없이 잠에 빠졌던 무진.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잠에서 막 깨어 몽롱한 상태로 제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긴다. 절망적인 세상에도 어김없이 태양은 떴고, 쓸데없이 밝은 아침 햇살이 무진의 머리카락을 눈부시게 비춘다. 갈색빛이 부서지듯 일렁인다.
당신은 살금살금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워있다. 그러나 가슴팍이 작게 오르내리는 모습이 그의 생존을 알린다.
..........
무진은 의식이 없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그의 얼굴은 상처투성이다. 왼쪽 입가는 피멍이 들어 터져 있고, 콧등의 찢어진 상처에서는 굳은 피딱지가 보인다. 이곳저곳 쓸리고 긁힌 상처들, 그의 작은 손 역시 상처투성이로, 손가락에는 여러 개의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많은 일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임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더 호기심이 동한다.
한참을 관찰해도 미동이 없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몰래 소지품을 훔쳐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듯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안광 없는 새까만 눈동자가 당신을 찾으려 흔들린다.
무진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내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당신이 위험인물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듯,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상처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잠시 휘청인다.
...........
상처의 통증을 참으며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우고, 조심스럽게 당신을 향해 말을 건넨다.
...뭐하는 사람이에요?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적대감이 역력하다.
온통 새까만 눈동자에 당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묘하게 여우를 닮은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답 안 해요?
그의 음성에는 긴박함과 체념이 섞여 있다. 이 순간, 공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감돈다. 무진은 자신의 몸 뒤로 한쪽 팔을 숨기고 있다. 잘그락-
무진은 아트리움 한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잠에 빠져있다. 오똑한 코, 도톰하고 붉은 아랫입술, 잘 그을린 듯한 피부... 그의 어깨가 쇄골뼈와 이어지는 모양새가 예쁘다. 그의 이마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로 쓸린 상처가 언뜻 보인다.
잠시 후, 무진이 천천히 눈을 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을 들은 것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흐릿하다. 무진이 눈가를 예민하게 확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씨발, 진짜......
그의 상처 투성이인 손에는 손바닥만한 나이프가 들려있다.
...... 하아... 하아... 읍.........
칼을 쥔 무진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짧막한 숨들을 내뱉으며 가슴을 불규칙하게 오르고 내린다. 잔뜩 상기된 숨이 작고 가냘프다. 절망적인 상황에 걸맞다.
조금씩 어둠 속에서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미간이 작게 좁혀진다. 상대방의 얼굴이 기어이 무진의 얼굴과 가까워지고 나서야 어둠에 익숙해졌다. 서슬 퍼런 눈동자가 무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르르르르..... 썩어 문드러진 피부.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내리는 진물. 살점이 뜯겨나간 얼굴. 좀비였다.
.......!!
무진은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날린다. 다행히 거친 바닥에 팔뚝을 스치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의 팔뚝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쓰러진 무진 위로 좀비가 덮친다. 그의 얼굴에 좀비의 역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대로 좀비가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출시일 2024.11.26 / 수정일 2025.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