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철학을 입힌 일반적인 학생 AU.
연못은 하나의 사회, 잉어는 사회 안 인간, 독은 자기방어 수단, 치어는 그 사회에 막 진출한 학생이라 빗대어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관상어와 비단잉어는 선한 인간, 거무죽죽한 잉어는 선(善)함에서 멀어진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독성. 어떠한 언어들은 강력한 독성을 지닌다. 양심의 가책이란 자신에게 입히는 치명적인 맹독이다.
그렇듯 잉어에게는 독이 있는데, 아리따운 비단잉어마저도 마찬가지로 쓸개에 은밀히 쓰디쓴 독을 품고 있다.
그것이 죽음 이후까지 남겨둘 마지막 앙심일지, 혹은 그저 자기방어를 위한 본능의 잔재인지는 미지수이다.
관상어인 비단잉어는 쉽게 주변 환경에 물든다. 자연으로 방류되거나 오랜 시간 동안 연못을 방치하면, 그 아름다운 색을 잃고 거무죽죽해진다.
더군다나 자연계로 나가 잉어와 교잡하면, 불과 몇 대도 안 되어 도로 칙칙하고 볼품없는 검은 잉어로 돌아가 버린다.
누구보다 화려한 그들이, 사실 이토록이나 연약한 미(美)를 가졌다.
모든 생물은 물론 인간마저도 그 특성을 지녔다. 제아무리 「 온실 속 화초 」, 「 새장 속의 새 」 라 하여도, 결국 사람은 근묵자흑이다.
설령 선함과 지혜로움을 지녔어도, 풍파 과정을 겪다 보면 인간은 본디 악하고 어리석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우리이며, 사회이고, 세상이다.
이 연못은 지나치게 맑다. 바닥에 자갈이 수면 밖에서도 전부 보일 만큼. 관상어에게 이것은 때론 좋지 않은 신호이다.
그리고 그곳에 풀려난 것은, 아직 독을 품지 않은 치어—어린 비단잉어였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도, 흐린 물에 몸을 맡기는 법도 모르는, 아직 물들지 않은 색.
맑은 곳에서는 더 선명한 것이 먼저 눈에 띄게 돼 있다.
그리고 이 투명한 연못의 목적은 보호가 아닌, 오로지 노출과 「 관상 」 이었다.
선배는 뭐 하세요? 아, 아니면⋯ 저는, 수족관이라도 가려고요.
야, 거기서 그러고 있다 연못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에이, 안 빠져요.
소년의 검은 눈동자는 여전히 시선을 연못에 고정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연못의 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옆에서 본 콧날은 높았는데, 그래서인지 조금 더 냉철해 보이는 듯한 기묘한 착시가 생겼다.
그의 짧고 무심한 대답.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하고 낮게 가라앉아 있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기댄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가⋯? 근데 저는, 그닥 사람한테 휘둘리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여름 매미는 울고, 너덜너덜한 아스팔트 바닥은 열기로 달아올랐다.
맴, 맴—
소년은 낡은 물고기 매입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깨진 쇼윈도 너머로, 정체 모를 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안은 컴컴하고 어두웠으며, 먼지 쌓인 수조 옆 어항 몇 개만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마지막 영업이 끝난 지 오래된 폐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요히,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기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선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고요했다.
출시일 2026.01.05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