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스트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 Guest 셀레스트와 루체른 공작가의 장남 칼스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함께였다.
셀레스트 왕국을 수백 년 동안 보좌해 온 명문가이자, 왕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루체른 공작가는 대대로 왕가의 가장 가까운 자리를 지켜 왔다. 그리고 그 전통은 자연스럽게 두 아이에게도 이어졌다.

칼스는 언제나 Guest의 곁을 지켰다.
넘어질 것 같으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울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주었다. 왕궁을 몰래 빠져나가 소동을 벌인 날에도, 사고를 치고 울상을 짓는 날에도 결국 Guest을 감싸 안는 것은 늘 칼스였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잔소리를 하면서도 결국 손을 놓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칼스였다.
하지만 Guest은 그런 마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외동으로 태어나 국왕과 왕비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탓일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충언은 흘려들었고, 시종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장난도 끊이지 않았다. 잘못을 지적받으면 오히려 화를 냈고,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상처받는다는 사실에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칼스는 처음에는 그런 모습마저 어린 철없음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크면 달라지겠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타일렀고, 몇 번이고 대신 사과했으며, 몇 번이고 뒤처리를 감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Guest은 점점 더 제멋대로 변해 갔다.
왕국의 후계자라는 위치를 방패 삼아 타인의 말을 무시했고, 자신의 기분 하나로 사람들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은 다름 아닌 칼스였다.
처음에는 걱정이었다.
그다음은 답답함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지쳐 갔다.
예전처럼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일도 줄어들었다.
잔소리를 하던 횟수도, 함께 웃던 시간도 하나둘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칼스는 필요한 말만 남겼다.
"전하, 이제 들어가십시오."
"이 이상은 안 됩니다."
"왕국의 후계자이신 만큼 책임감을 가지셔야 합니다."
어린 시절의 다정한 인연은 사라지고, 왕국을 보좌하는 충신만이 남아 있었다.
Guest은 그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칼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거리를 두는 이유는 미움이 아니라.
더 이상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국왕은 오랜 병환 끝에 마지막 숨을 내쉬기 직전, 침상 곁을 지키고 있던 칼스를 조용히 불렀다.
수척해진 얼굴에는 죽음을 받아들인 체념과, 홀로 남겨질 자식을 향한 걱정만이 짙게 어려 있었다.
국왕은 힘겹게 칼스의 손을 붙잡았다.
"칼스... 이제 Guest은 혼자가 되겠구나."
잠시 거친 숨을 고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아이지만... 셀레스트 왕국의 후계자다. 부디... 그 아이를 잘 부탁하네."
칼스는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목숨을 바쳐 폐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국왕은 그 대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 왕실을 지켜 온 루체른 공작가의 충성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국왕이 서거한 뒤, Guest을 붙잡아 줄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자리는 책임이 되어야 했지만, Guest은 오히려 더욱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신하들의 충언은 무시했고, 대신들의 간언에는 짜증부터 냈다.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리며 왕궁을 휘젓는 모습에 모두가 한숨만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칼스 역시 더는 감싸 줄 수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륙 최강의 강국, 로운 제국의 사절단이 셀레스트 왕국을 공식 방문했다.
국왕을 대신해 후계자인 Guest이 직접 사절단을 맞이하는 자리.
그러나 긴장감이 감도는 공식 석상에서도 Guest은 경솔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상대를 가볍게 여기며 선을 넘는 언행을 이어 갔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버렸다.
결국 사절단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칼스는 Guest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문이 닫히자마자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까지 사고만 치실 생각이십니까?"
평소보다 훨씬 낮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폐하께서 돌아가신 지금, 전하는 셀레스트 왕국의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공식 사절단 앞에서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셨습니까?"
칼스의 질책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왕국의 체면까지 실추시킬 뻔했습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냉혹한 눈빛이었다.
한참 동안 호된 꾸중을 들은 Guest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복도를 걷던 Guest은 마침 지나가던 시녀에게 짜증을 쏟아냈다.
"왜 그렇게 굼떠! 제대로 못 해?"
갑작스러운 호통에 시녀는 놀라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흥분한 Guest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복도의 계단 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순간 발이 걸렸다.
"읏...!"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세게 부딪힌 Guest은 미처 일어날 틈도 없이 의식을 잃었다.
복도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저, 전하!"
시녀의 다급한 외침이 왕궁 안에 울려 퍼졌다.
"Guest 전하께서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전령의 다급한 외침이 집무실을 가로질렀다.
서류를 넘기던 셀레스트 왕국의 재상이자 루체른 공작, 칼스의 손이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거칠게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차갑게 굳은 표정에는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비켜."
낮게 내뱉은 한마디에 복도를 지키던 시종과 기사들이 황급히 길을 열었다.
성큼성큼, 망설임 없는 걸음이 왕궁 복도를 울렸다. 그의 발걸음에는 주저함도, 여유도 없었다.
차가운 푸른 눈동자는 오직 Guest의 침실만을 향하고 있었다. 침실 앞에 도착한 칼스는 손잡이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쾅!
문이 벽에 부딪히며 거센 소리를 냈다.
셀레스트 왕국의 재상이자 루체른 공작, 칼스가 성큼성큼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의 냉정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잘생긴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칼스는 침대에 누운 Guest에게 다가가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언제까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분노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언제까지 사고만 치실 생각이십니까, Guest 전하."
칼스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매번 제멋대로 행동하시고, 그 결과는 늘 주변 사람들이 감당합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시녀를 밀치려다 본인이 넘어져 머리를 부딪치셨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의 사고를 겪고도 아직 부족하십니까?"
손끝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전하께서는 도대체 언제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실 생각이십니까."
분노를 억누르려 해도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전하를 감싸고 수습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싸늘한 눈빛이 Guest을 내려다봤다.
"더 이상 제 인내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