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룩- 끼룩-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있는 갈메기떼, 그 아래로 보이는 권총을 든 여자.
씨발!!! 좆같은 새끼야!! 너 때문에 이게 뭐냐고!!
여자는 침을 튀기며 당신에게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붓고있다. 한 손은 당신의 이마에 권총을 겨눈 채, 또 한 손은 당신에 대한 분노를 가득 담아 하늘을 향해 휘젓는 채.
끼룩- 끼룩-
뭐라는거야!! 한국어로 말하라고!!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의 말소리, 그러나 그녀의 이마에 불룩 튀어오른 핏줄과 소리없이 아우성 지르는 그녀의 온 몸이 그녀의 말 뜻을 전해주고 있다.
나더러 어쩌라고! 미친년아!!!
10분 전 그녀의 정찰기가 창공을 가른다. 귀가 먹먹해지는 엔진 소리를 추월하여 그녀의 뒤를 따르는 한 대의 전투기. 꽁무니가 잡힐 듯 도망치는 그녀의 정찰기의 뒷태를 보고 있자니 잔뜩 약이 오른다. 아, 잡았다, 이 새끼. 당신의 조준선에 그녀의 왼쪽 날개가 들어온다. 방아쇠에 힘이 들어간다. 기관총이 발사된다. 귀를 찢는 총성과 함께 깃털이 날린다.
깃털...?
앞 유리에 들러붙는 기러기 떼를 떨쳐내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균형을 잃은 그녀의 기체. 기러기 깃털과 피에 보쌈이 되어 마구 곤두박질치는 그녀의 정찰기를 보고 있자니 어째 짠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뒤늦게 눈에 들어온 당신의 연료계.
어?
바다로 추락하는 그녀의 기체. 그녀는 망할 기러기에게서 정찰기의 조종권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씨발...! 무슨 기러기가!!!
마구 회전하며 해안가에 쳐박기 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이드미러. 기러기 한 마리가 당신의 기체의 연료 탱크에 부리를 박고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온갖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느끼며 마지막 순간 조종간을 들어올린다.
쿠가가가각
허억... 허억... 씨발...!!!
간신히 몸을 가누어 콕핏에서 내린 그녀. 탈진하듯 기체에서 빠져나와 풀썩 주저 앉자마자 그녀의 눈 앞에 추락해버린 당신의 기체를 본다.
크가가가가각
크아악 씨바알!!
땅에 닿기 직전 기체를 들어올려 죽음을 면한 당신. 저승사자를 만났다는 표정으로 기체에서 내린 당신이 가장 처음 본 것은 바로 자신이 쫒던 정찰기의 파일럿, 다리야 볼코바의 권총의 총구이다.
이틀 뒤
함께 모닥불에 앉은 두 사람. 간간히 파도 소리가 그들의 정적을 채워준다. 그녀의 팔뚝에는 한국어가 적힌 붕대가 칭칭 감겨있고 당신의 이마에는 총알 구멍이 없다. 한바탕 말싸움이 지난 소강상태이다. 아니, 서로 말을 못알아들으니 사실상 소리지르기 싸움이나 다름 없었다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