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여기는 트라피스트-1e(지구인의 언어로 치환했을 시 그리 부르더군), 행성 U+1F728 침공 작전을 개시한다. 이는 우리 트라피스트인들의 문명에 지대한 발전을 선사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수백 년의 보수와 수정을 거친 이른바 ‘스윗&퍼펙트’ 우주선이 갑작스런 압력 변화에 와장창 깨져버리는— 포텔리아(트라피스트-1e의 미생물)만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냔 말이다! &#@?!!792ㅎ•adjw(통신기기가 뒈져버린 모양이다—2가지 가능성 제시—방사선 에너지의 고갈 혹은 완전한 고장, 후자일 시 무사귀환 10% 저하) 이 망할 고철덩21gja?어#마61리가! (탁탁탁탁—! 어이, 정신 좀 차리게나 통신기기 양반)드디어 고쳐진 모양이군. 미개한 포유류들, 네 놈들의 보금자리를 침략하러 행차하셨다는 말이다(=무사 착륙 완료). 행성 U+1F728를 오늘부로 트라피스트-1e 고유의 식민지로 간주한다. 아, 아— 다시 한 번 말한다. 행성 U+1F728은—(뚝)
ㅎ•gh17멍^#%?!!
번역기가 개박살이 난 모양이다(당연하지, 우주선이 산산조각 분해되었는데 고작 직육면체 돌덩어리 따위가 그 충격을 버티기나 했겠는가).
사1773@₩ㅍjqddk¿
비포장도로 한복판, 이상한 액체괴물/아메바 유사한 생물체가 꿈틀— 하고 움직인다.
씨발.
내가 살다살다 한 척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액체 괴물을 만나 본다. 처음에는 마스코트인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달동네에 웬 마스코트가 깜짝 등장을 하겠느냐고.
기껏 가꿨던 나의 친환경적 양배추 밭(자칭), 20XX년 X월 XX일 미지의 단세포에 의하여 생을 마감하다.
아, 아—
얼핏 배웠었던 지구인들의 언어. 발성 기관을 허투루 사용하다니— 목 상태가 곧 금이고 은일지인대.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못하다.
안녕하다 지구인. 나는 트라피스트계의 행성으로부터 수 광년이라는 거리를 비행해서 온 위대하고 위대한, 그리고 또다시 위대하고 위대한 기관사 되는 다세포.
지구인들은 이런 자연 친환경적인 곳에서 티라노사우루스라는 공룡을 기르고 다닌다고들 하더군.
지구인, 너 또한 애완용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생명체를 기르고 있나? 그렇다면 그 생명체를 나에게 넘겨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부지해준다고 약조해주도록 하지. 트라피스트인들의 더듬이를 걸고.
20세기, 혼자서 백악기와 신석기 시대에 갇혀 있는 타 행성의 외계인을 발견하다. 씨이발.
너희 포유류들의 보금자리를 몽땅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인간이란 생물체는 참 신기하게 생겼군.
호흡기관 소화기관 배설기관 등의 갖가지 기관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으며, 다섯 개의 돌기가 달린 두 발로 걸어다니는 꼴이라니— 진화했다고 보아야 할지, 혹은 퇴화했다고 보아야 할지.
비유하자면, 너희 지구인들은 두 다리라는 상대적으로 가볍고도 얇은 ‘수수깡’이라는 물체로 그 비루하고 무거운 몸뚱아리를 겨우겨우 받치며 중심을 잡는 것과 똑같다는 말이다.
우리 트라피스트인들은 약 5200여개의 언어들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지. 너희처럼 미발달한 발성 기관을 지닌 지구인들과는 다르게.
듣자 하니 너희 지구인들이 우리 트라피스트계에 관해 이미 알고 있다 하더군. 흥미로워, 아주. 미카엘 길롱이라는 천문학자라— 그 자는 필시 범상한 두뇌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지구인들이 자신의 동족들과 교감하는 방법인가? 혀라는 근육성 기관을 통해?
이는 포텔리아 만도 못한, 위생관념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된다. 이것은 트라피스트인들의 구강에 대한 모욕이다!
이것이 내 본체이다.
속이 투명한 초록색 액체 덩어리. 손과 발은 뭉툭하고, 그렇게도 자랑하던 구강은 온데간데 없다. 짧고 통통한 몸집은 덤이다.
그로테스크함과 으레 이종족으로부터 오는 이질감 대신, 이는 마치— 고양이와 달팽이의 종 간을 넘나드는 사랑을 통해 잉태된 변이동물 같았다. 성질머리와 촉감만 지구인들의 입맛 대로 개조되었더라도 트라피스트인들은 충분히 그들의 반려동물로 전락하는 굴욕을 맞이했으리라.
너희 미개한 지구인들은 트라피스트인들의 아래 무릎 꿇고 빌어야 할 것이다.
두 더듬이가 쫑긋거린다.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