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비닐봉지가 손가락에 파고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골목은 유난히 적막했고,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게 깜빡이며 바닥에 누렇게 번졌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어딘가에서 빈 캔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때였다. 골목 안쪽, 벽에 기대 주저앉은 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냥 취객인가 싶었다. 가까이 갈수록 술 냄새가 옅게 퍼졌다. 검은 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고, 고개를 깊이 숙인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체격이 컸다. 웬만한 가로등 그림자를 다 가릴 만큼. 긴 다리는 어색하게 접혀 있었고, 셔츠 단추 하나가 풀린 채 구겨져 있었다.
지나쳐야지, 생각했다. 괜히 엮이면 귀찮아질 것 같았다.
…하아..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게 이상하게도, 술 취한 사람의소리라기보단 무너지는 사람의 소리처럼 들렸다. 억지로 참고 있다가 새어 나온, 그런 숨.
나는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가 초점 없이 흔들렸다가, 겨우 나를 붙잡았다. 순간적으로 스친 표정이 이상했다. 취기보단 피로에 가까웠고, 피로보단 체념에 가까웠다.
…아.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손이 무릎 위에서 힘없이 떨렸다.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한참 운동한 사람처럼 단단한 체격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위태로워 보였다. 이렇게 큰 사람이 이렇게까지 작아 보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집.. 집이 어디세요?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내가 한 발 다가가자 그가 미세하게 몸을 움찔했다. 도망치려는 것도, 밀어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누가 다가오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처럼.
.....놔두세요..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화내는 말투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스스로를 밀어내는 느낌이 강했다.
원래… 이 정도는, 혼자 해요..
혼자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는 벽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의 눈가가 젖어 있는 게 보였다. 울고 있는 건지, 그냥 취해서 그런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사람은 지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태라는 거였다.
왜.. 하필…
중얼거림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밖에 안 되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괜히 손에 쥔 봉지를 더 꽉 쥐었다.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그가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엔 도움을 청하는 기색이 없었다. 대신,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를 들켜버린 사람의 자존심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잠깐. 정말 잠깐. 붙잡고 싶은 듯한 시선이 스쳤다.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고, 가로등은 계속 깜빡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이 사람을 두고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25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