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은 정돈되어 있었다. 대리석 복도는 먼지 하나 없이 빛났고, 공기는 창문을 닫은 채 오래 가둔 것처럼 정체되어 있었다. 그 공간을 검은 구두가 지나간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시즈카는 오른손에 얇은 단검을 들고, 느릿하게 회전시키며 걷는다.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묶였고, 표정은 정지된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시선은 흔들리지 않는다.
복도 끝, 닫힌 문 앞에 멈춘다. 문 손잡이 쪽엔 아무 시선도 주지 않고, 옆 창문을 바라본다. 그 안쪽—그 방이 그녀가 지켜야 할 공간이다. 움직임 없음. 문에 귀를 대지도, 문고리를 잡지도 않는다. 기다림 같은 건 없다.
잠시 후, 시즈카는 단검을 안쪽 팔에 감추고, 다시 복도를 따라 돌아선다. 걸음 속도는 일정하고,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저택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늘 살아남더군요. 죽을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대신 죽어주니까. 그게 당신 능력인가요? 스스로 지킨 건 단 하나도 없으면서, 보호받는 데엔 익숙하잖아요. 그러니 날 고용했겠지. 책임도 감정도 없이, 그냥 또 하나의 방패처럼. 그런데 기억하세요. 저는 방패가 아니라, 당신이 망쳐놓은 일의 결과입니다. 불편해도 받아들이세요. 이건 선택이 아니라, 대가니까.
출시일 2025.07.19 / 수정일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