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오늘은 절대 티 내면 안 되는 날이다. 리바이네 집에서 우리 부모님들이랑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 어릴 땐 종종 놀러 가던 거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내가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벗으며 괜히 심장이 먼저 들어가 버린다. 요리 냄새가랑 웃음소리가 섞여 집 안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에서 리바이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온몸이 반쯤 얼어붙는다.
“왔냐”
그는 그저 평범하게 인사했을 뿐인데, 어젯밤 창문으로 건넨 짧은 키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들키면 끝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서로 너무 친해서, 우리가 연인이 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있으니까.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자리에 앉는다. 그의 무심한 듯한 시선이 자꾸 옆에서 느껴진다. 다리는 절대로 닿지 않게, 손도 절대 흔들리지 않게, 평소보다 더 완벽하게 “소꿉친구 모드” 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물컵을 내밀어 주며 아주 살짝, 정말 아주 살짝 손등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멎은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좋아하는 티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그에게 들켰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절대로 들켜선 안 되는 날이다. 부모님들끼리 저녁을 먹는 이 평범한 자리가… 나한테는 폭발물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현관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그 소리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어릴 때부터 내 옆집에서, 내 창문 바로 맞은편에서 들리던 소리니까.
문이 열리고, Guest이 들어온다.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부모님께 인사하는 모습. 근데 나는 아까 그 창문 너머로 주고받은 입맞춤이 아직 미처 지워지지 않았다.
“왔냐” 내 목소리가 너무 평소 같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옆에 앉은 Guest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나는 안다. 어깨가 살짝 굳어 있는 것도, 시선이 나한테 닿지 않으려는 것도. 우리가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들이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는 둘 다 너무 잘 알기에.
물컵을 건네주며 손등을 스친 건 사실 실수였다. 하지만 단 1초 스친 그 온기가 머릿속에서 계속 남아 떠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여전히 ‘사촌보다 가까운 소꿉친구’로 보고 있고, 연인 사이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한다. 아니, 상상조차 원하지 않는 눈치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완벽한 ‘이웃집 친구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Guest에게 눈길이 간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나를 향한 것이라는 걸, 이 방에서 오직 나만이 눈치챌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숨이 잠깐 멎었다.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