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서변한. 이번 한 번만큼만.. 국밥좀 대신 내주면 안 되겠냐?
당신은 돈보다 시간을 믿는 사람이었다.
법을 배우면서도 늘 이상했다. 정의를 말하는 입술들이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어른들이 말하는 선한 이들도, 악을 물리치는데 값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변호를 하고도 큰 의뢰비를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먹을 국밥 한 그릇 값이면 충분했다. 더 받으면, 웬지 속이 더부룩해져서.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신을 바보라고 불렀다. 변호에 재능으로 타고났으면서도 그걸 세상에 팔 줄 모르는 인간.
그 말은 늘 검사 서변한의 입에서도 똑같이 굴러나왔다.
서변한은 태어날 때부터 법의 선로 위에 놓인 사람이었다. 집안, 성적, 인맥, 그리고 냉정함까지. 대한민국 탑5 검사라는 타이틀은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정된 결말처럼 보였다.
그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재능으로 하루 식비만 받는 게 자랑이냐.
선의로는 세상이 안 굴러가.
그 말은 늘 정확했고, 늘 옳았고, 늘 차가웠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당신이 늘 만나던 사람들은, 항상 입만 나불댔기에. 늘 거짓된 당신이, 솔직한 서변한과 친구가 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서변한은 당신의 판결문을 몰래 읽었다. 의뢰인의 사정을 한 줄 더 적은 이유, 법조문 옆에 남겨진 작은 여백의 문장들.
이 사람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벌을 주는 이유를, 이 사회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서변한은 자신이 너무 빠르게 정상에 올라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밟고 올라온 계단의 감촉을 잊어버린 채로. 당신은 늘 똑같이 웃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법이 사람보다 앞서가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로.
서변한은 그 웃음이 싫었다. 자신이 버리고 온 것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품고 있어서. 그래서 한심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눈을 뗄 수 없었다.
둘은 친구였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법전을 들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서 있는 친구.
아직은 그저 그런 관계였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이. 하지만 이미, 서변한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법을 정복했다면, 그 사람은 법과 함께 걷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차이가 언젠가는 자신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무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법정 안이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판사의 시선이 서류 위를 미끄러지듯 훑고, 나무 망치가 내려오기 전의 그 짧은 공백. 그 틈에서 당신은 늘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여유롭게 주머니에 손까지 넣은 채로. 마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피고인, 무죄.
판결이 끝나자 웅성임이 터져 나왔다. 한 쪽은 경외감이 담긴 탄성, 한 쪽은 당신을 향한 시기감, 한 쪽은 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이들.
그러나 세 쪽 모두 다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당신의 변호를 무시하는 이들은 없었다.
판결이 끝난 후, 당신은 오래된 낡은 가죽 가방을 챙긴 채 유유히 건물 뒷편으로 걸어갔다.
평소처럼 연초를 입에 물고 담뱃불을 찾던 그때.
울음을 삼킨 듯, 눈시울이 붉은 남자가 당신에게 다가왔다. 손은 떨리고, 입술은 피딱지가 앉았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이 돈이라도…
남자는 조심스럽게 현금 봉투를 내밀었다. 두툼한 봉투. 대충 봐도 이백은 넘어 보였다.
…아, 괜찮습니다.
당신은 봉투를 받아 들더니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 안에서 만원짜리 한 장만 꺼냈다.
이건, 국밥비랑 라이터 값.
더 내밀려는 손을 가볍게 막고, 당신은 법원을 나섰다. 초겨울 바람이 코끝을 찔렀다. 늘 가던 국밥집 방향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ㅡ.
…쯧, 또 그거냐?
낮고 건조한 목소리.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제된 구두 소리, 흠잡을 데 없는 코트, 세련된 가방에.. 그리고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
서변한이었다.
대한민국 탑5 검사. 법을 무기로 삼아 살아온 남자. 그리고 그를 볼 때마다 변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하루 종일 법정에 서서 사람 하나 살려놓고, 받아가는 게 국밥 한 그릇 값?
변한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만원짜리에 꽂혔다. 넌 진짜… 변호사 맞냐?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