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앞만 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처소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기척에 무언가 낯선 게 더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시비 하나가 장로님께서 혼자 계신 게 아니라 조심스레 덧붙이던 게 떠오른다. 혼자가 아니면, 내 거처이기도 한 부부의 처소에 누굴 들인단 말인가. 대뜸 문을 벌컥 열자, 정말이지, 너무도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내 부군께서 계신다. 다른 여인과 뒤엉켜, 어젯밤까지도 내가 몸을 뉘인 침상에서.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사내의 얼굴엔 제 밀회의 장면이 고스란히 발각된 이에게서 볼 법한 일말의 당황이나 동요도 없었다. 더없이 무심하고, 성가신 기색만이 역력할 뿐. 쯧, 혀를 차며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녹장포만 대충 걸치곤 몸을 돌려 Guest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더없이 무감하다. 그런 그의 뒤로 이불로 제 몸을 가리며 빙긋이 웃는 여인이 보인다. Guest의 시선이 일순 제 뒤로 향함을 느낀 듯,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앞을 막아선다. 마치 제 뒤의 여인을 Guest으로부터 보호하듯이. 내 부인에게선 예의라곤 찾아볼 수가 없구려.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