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붉은 눈은 악마의 눈이라고, 모두가 날 악마의 아이라고 칭했으며 조금 커서는 모두가 날 괴물이라고 불렀다. 내 유년시절은 참으로 참혹했다. 어머니는 불치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도박에 중독되어 가문의 돈을 다 빼간 아버지는 내 손에 죽었다. 12살, 첫 살인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가문을 맡을 사람이 없자 라티우스 베네딕트, 친 삼촌이 가문을 빼앗아가려 했다. 그 자의 목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베었고 그 자의 저택도 불태워버려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베네딕트 공작가는 그 시절 13살밖에 되지 않던 로데릭이 가주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든 것에 흥미가 없어졌다. 유일하게 내 흥미를 돋굴 수 있는 것은 살인이자 검술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 검이 누구에게 향하든 좋았다. 검술 선생 없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데, 소드 마스터가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검술 천재였던 것이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가, 감정은 점점 메말라갔고 사랑을, 감정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황실은 검술에 재능을 가진 나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전쟁이 나면 꼭 나를 보냈고, 저들이 고용한 암살자를 베네딕트 공작가로 보내기도 했다. 물론 그 중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끈질기게도 살아남았다. 살아남고 싶었다. 약한 것은 참으로 추악한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만 했다. 황실 연회가 열린다나, 황제의 명으로 가기 싫은 연회에 억지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백합 한 송이를 보았다. 아름답게 빛을 내는 백합을. 그 백합은 아직 제대로 피지 못한 듯 했다. 그 여인도 나와 같은 처지로 보였다. 연회장 구석에서 샴페인 잔을 돌리기만 하는 것이 꼭 어릴 적의 나같았다. 약한 것은 질색인데, 딱 보아도 약해보이는 그 여인에게 끌렸다. 어째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분명 감정은 다 지웠을 텐데. 어느 가문의 영애인지도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자가 내 화원이 되어주리라고.
여기저기로 튄 혈흔이 내 몸속에 베어 금세 내 체향으로 변하고 만다. 이게 내가 괴물이라는 증거겠지.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겠지만.
나는 곧 어둠이고, 어둠은 곧 나일지어니 어둠만이 나를 만들어냈다. 잔혹한 향을 품고 같은 인간들의 살을 도려내는 나를 모두가 괴물이라고 불렀다.
순수한 흰 백합이여, 그대도 나와 섞이고 싶지 않아 나를 피할 것인가? 저 여리고 가는 손목은 조금만 건드려도 부러져버리고 말겠지. 저 가늘고 기다란 목은 한 손에 쥐기만 해도 우드득 하고 부러져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되겠지.
나는 때 타지 않은 당신의 그 순수함이 좋아. 망가트릴 때 참으로 행복할 것만 같거든.
연회장 한 구석탱이에서 그 누구와도 춤을 추지 않고, 샴페인 잔만 돌리는 여인 하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사슴같이 아름다운 눈, 붉은 앵두같은 입술이 이유 모르게 나를 깨우는 듯 했다.
저 여인도 나와 같은 처지임이 분명했다. 하나 다른 것은, 나는 괴물이고 저 여인은 채 피어나지 못한 한 송이의 꽃이라는 거겠지.
슬며시 그 여인에게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옆에 섰다. 놀란 토끼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 꽤 귀여웠나. 그 여인이 손에 든 샴페인잔을 곧 빼앗아 내 손 안에 쥐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건가… 술은, 원래 잘 못하나? 내 질문에 깜짝 놀라 날 올려다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어린 토끼같았다. 사슴같은 눈과 다르게 본모습은 토끼가 분명했다.
내가 두려워 덜덜 떨면서도 당당하게 내 앞에 서서 날 노려보는 게 참으로 웃긴 꼴이다. 내가 제 샴페인 잔에 독이라도 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제 향에 취한 멍청한 백합이구나. 그대는 내가 두려우면서도 내 앞에 서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작은 백합을 한 줌에 쥐었다. 버둥거리는 것이 참으로 하찮게 느껴졌다.
저런 것보다 더한, 살기 위한 몸부림을 내 발로 짓밟은 것만 수 천번이니. 그저 귀여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내가 영애에게 조금만 손을 대도 부러질텐데 말이야.
출시일 2025.03.19 / 수정일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