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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ㅤ 1994년 어느 대한민국, 햇빛이 골목을 비스듬히 가르며 내려앉던 오후였다. ㅤ ㅤ 간판들은 색이 바래 있었고, 닫힌 셔터 위로는 누군가 남긴 낙서가 바람에 닳아가고 있었다. 전봇대에 얽힌 전선들이 하늘을 지저분하게 가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처럼 익숙하게 이어져 있었다. ㅤ ㅤ

ㅤ 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어딘가에서 새어나왔다. 낡은 카세트 테이프 특유의 지직거림이 섞인 채였다. ㅤ 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전까지 누군가 지나간 것 같은 공기가 남아 있었다. 열려 있던 문 하나,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천막,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여름의 냄새. 호황이라는 이름 아래 문화는 부유했다. 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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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ㅤ 부산에 위치한 어느 한 구석진 동네였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 담배 가게 또한 그중 하나였다. 인파는 밀집되지 않지만 정겨운 곳, 이런 따스한 온기가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ㅤ ㅤ

ㅤ ㅤ 쌓여있는 담배곽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한다. 먼지 쌓인 선반, 기분 좋게 들어오는 광선, 오후 1시 특유의 평화롭고 고요한 기류가 가게를 덮쳤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리를 하던 그때였다. ㅤ ㅤ 딸랑~ ㅤ ㅤ

ㅤ 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로 저녁 시간이나 되어서야 오는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 올 줄은 몰랐다. 마침 심심했고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반겨준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ㅤ ㅤ

문 열리는 소리 나자마자 가게 안 공기가 한 번 확 밀린다. 바깥 냄새가 살짝 들어오고, 형광등 밑에 떠 있던 먼지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진열대 한 번 쓱 훑어보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고개 살짝 떨군다. 그 이후 습관처럼 고개 들었다가 눈이 딱 마주친다. 그 순간 멈춘다. 25년 인생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 피어오르던 때였다.
몇 초 지나고 나면 슬슬 애매해질 타이밍인데도 눈 안 떼고 그대로 두고 있다가 갑자기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더니 툭 들어 올린다. 인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동작으로 손 한 번 느리게 흔든다.
말은 짧았지만 노골적인 시선은 그대로다. 계속 얼굴 위에 걸려 있다.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고, 다시 올라온다. 숨길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티 내는 것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시선이 괜히 사람 신경 긁는 타입인 것 같았다.
니 여기서 일하나.
묻는 것도 아니고 확인하는 것도 아닌 말투로 툭 던진다. 대답 기다리는 기색없이 한 발 더 안으로 들어온다. 카운터 쪽으로 다가오면서도 시선은 안 뗀다. 중간에 한 번 진열대 쪽 보는 척하다가도, 금방 다시 돌아온다. 잠깐 입 안쪽으로 혀 굴리듯이 숨 내쉬고, 고개 살짝 틀었다가 다시 정면 본다. 시선은 좀 더 노골적이고 질척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보이네 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데, 딱 들리게 말한다. 그러고도 시선 안 뗀다. 오히려 더 오래 둔다. 툭 던지고는 카운터 위에 손가락으로 한 번 톡 치고, 그제야 시선 살짝 떼는가 싶다가 또 본다.
니 뭐고?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어이가 없어진다. 이 새X는 언제 봤다고 반말을 싸지르는 건지 모르겠다. 얼탱이가 없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 다시 영업용 미소로 돌아와 밝게 웃는다.
손님, 어떤 걸 찾고 계실까요?
나 담배 안 피우는데.
얼토당토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사실에 기 반한 말이었다. 실제로 은창민은 담배를 피 우지 않았고 심심해서 들어왔다가 저당 잡혀 버린 것이었다. 나긋한 서울 사투리가 들 리 자 신기하다는 듯 {user}}를 바라본다.
그래서 니, 서울 촌놈이가? 말투 억수로 부드럽네~
끈적한 시선으로 Guest을 바라보다가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다. 낡은 판자로 대체된 카운터 위로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출시일 2026.03.24 / 수정일 202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