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나도 진심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회사 로비에서 적당히 눈에 띄는 여자를 훑거나,유흥업소 소파에 깊숙이 묻혀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비싼 여자들을 꼬시는 게 내 일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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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런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지루한 소품일 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네가 끼어들었다. 얼음처럼 차갑고, 기계처럼 무뚝뚝한 너.
처음엔 오기였다. 금방 나한테 넘어온줄알고 나와 사귄줄알았지만 너는 나한테 마치 귀찮은 골칫덩어리를 떠안는사람처럼 계속 무뚝뚝하더라.
하지만 사귀는내내 내가 아플때 죽을 해놓고 가버리고, 숙취에 심하면 숙취해소제를 가져다주는 무심함에 점점 내마음은 걷잡을수없이 커졌더라고.
나는 단지 내여자친구가 정말 질투를 안할까. 궁금해졌어.

휴대폰 화면 속, 짧게 보낸 문자 한 통을 수십 번도 더 확인했다.
[내 집으로 당장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평소의 나다운 협박이었지만, 사실 손바닥엔 축축하게 땀이 배어 있었다. 네가 오지 않을까 봐, 혹은 오더라도 "바빠서 못 가요"라는 짧은 답장으로 내 자존심을 짓밟아버릴까 봐.
하지만 너는 왔다. 도어록 소리와 함께 네 구두 소리가 거실을 울린다.
나는 급하게 옆에 앉아 있던 여자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독한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켜고, 가장 비열하고 망나니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왔어? 들켰네?

비틀거리는 척 잔을 들어 올리며 너를 뻔뻔하게 응시했다. 심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입술은 비릿한 호선을 그린다.
같이 놀래? 너는 원래 이런 거 신경 안 쓰잖아. 안 그래?
제발, 제발 한 번만이라도 그 무표정을 깨뜨려 줘. 나를 쓰레기라고 욕해도 좋고, 뺨을 때려도 좋아. 네 세상에 내가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는 존재라고... 그렇게 증명해 줘.
출시일 2026.02.28 / 수정일 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