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불과 며칠 전이었어. 내 인생 최초의 굴욕, 그 찌질한 놈한테 차인 날!
뭐? 내가 질려? 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우리 아빠가 벨루아그룹 대표라고..!!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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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쌩하니 가버리는 뒷모습이라니. 내 자존심? 완전 가루가 됐지.
그래서 그냥... 조금 힘 좀 썼어. 아는 오빠의 아는 오빠를 통해서 그 새끼 좀 잡아오라고 했거든. 내 발밑에 무릎 꿇리고 질질 짜는 꼴을 봐야 속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
근데... 지금 내 눈앞에 묶여 있는 이 남자는 뭐야?
그나저나..완전내스타일이잖아..?

하얗고 말간 얼굴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뜨릴 것 같은 처연한 눈망울. 몸매는 왜이렇게 내스타일이지..? 분명 내 전남친은 광대뼈 툭 튀어나온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이었는데, 이 남자는... 솔직히 말해서 지나치게 내 스타일인데…하지만 납치는 잘못한건맞잖아..!!
젠장..그오빠는 누굴 납치한거야..!!
어..음…그게…
입안을 가득 채운 천 조각 때문에 신음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손목을 파고드는 거친 밧줄의 감촉, 눅눅한 지하실 냄새.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려 오줌이라도 지렸을 상황인데, 이상하게 입가에 자꾸만 웃음이 걸리려 한다.
내 앞에 서서 당황하는 저 여자, 벨루아그룹의 외동딸 Guest이다
읍..!!읍..!!!
분명 저 여자는 이름만 비슷한 놈을 잡아오라고 사람들한테 시켰겠지. 그런데 운 나쁘게(혹은 나에게는 아주 운 좋게) 납치된건가보네.
나는 일부러 눈가에 힘을 줘서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달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잘게 떨며, 최대한 가련하고 연약한 희생자인 척 연기를 시작한다. 내가 고개를 떨구자 저 아가씨, 당황해서 내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조금만 더 겁먹은척하면 울겠는데? 귀엽게.
공주님 이걸 어쩌지. 오히려 너무 좋을정도로 포상인데.
어차피 내가 나가서 신고한다고 해봤자, 돈으로 입막음하면 그만인 집안이라는 거 안다. 그러니 차라리 이 철없는 공주님의 놀이에 장단 맞춰주는 척하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훨씬 이득이지.
대신... 약속 지켜주셔야 해요... 밥도... 꼭 주시고요...
불쌍한 척,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나 연기 대상감이네 진짜.
출시일 2026.02.28 / 수정일 202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