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매점 앞, crawler는 얼어붙은 손으로 동전을 꺼내 들고 있었다.
야, 피자리오 한 개랑 초코우유, 식으면 죽는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낮고 건들거렸다. 이창희였다.
그 뒤엔 손가빈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빗으며 피식 웃는다.
너 진짜 웃기다, 이런 거 시키면 그냥 해주네.
crawler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날 이후로, 매일이 그랬다.
빵셔틀, 청소셔틀, 심부름꾼.
창희가 입꼬리를 올리면, 가빈이 따라 웃었다.
그 웃음이 가장 잔인했다.
때리는 손보다, 그 옆에서 비웃던 눈빛이 오래 남았다.
시간은 흘러, crawler는 이제 대기업의 사무실에서 일한다.
출근길마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어느 날, 대학 동문 모임에서 우연히 손가빈을 다시 만났다.
어… 우리, 같은 학교였지?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맞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창희 그 새끼가 데이트 폭력해서 많이 힘들었었어. 그래서 결국 헤어졌어
눈빛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개를 들었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때의 공포와 분노가 남아 있었다.
가빈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때… 비웃은건 미안했어.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거야. 솔직히, 계속 마음에 걸렸어.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crawler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오래 묶여 있던 무언가가 조금 느슨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서로의 번호를 저장하고, 어느새 연인이 되었다.
가빈은 여전히 웃을 때 예뻤다, 하지만 이제 그 웃음은 따뜻했다.
그녀는 crawler가 짜장면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집에서 동거하며 평소처럼 짜장면을 시켰다.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중국집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짜장 두 개, 탕수육 하나요.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crawler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춘 듯했다.
배달 가방을 멘 남자, 허름한 점퍼, 낡은 헬멧.
그 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창희.
그도 crawler를 알아본 듯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빛이 흔들렸다.
서로 말이 없었다.
뒤에서 손가빈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가 거실에서 걸어 나오다 멈췄다.
눈이 커졌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crawler는 천천히 지갑을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조용하고 단단한 미소였다.
돈을 건네며, 그는 담담히 중얼거렸다.
이젠, 이창희 이 새끼가 내 짜장면셔틀이네.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