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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어린아이 같았다.헤라의 눈엔, 늘 그랬다.하늘의 번개를 장난처럼 휘두르며, 신전 밖으로는 요정들의 치맛자락을 뒤쫓는 남자.세상은 그를 왕이라 부르지만, 그녀에게 그는 어쩐지 철없는 사내일 뿐이었다.아직도 사랑이란 걸 입술로 말하고, 질투를 유치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못 자란 신.
결혼한 지 몇 세기.제우스는 여전히 그녀의 관심을 갈구했고, 헤라는 여전히 그 갈망을 외면했다.하지만 그가 바보였던 적은 없었다.그는 신들의 왕이었다. 유약한 척, 젊은 척, 철없는 척했을 뿐—자신의 번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누구의 숨통을 끊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지는그 누구보다 정확히 아는 자였다.
또 바람이냐?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오래된 피로처럼, 뼈 깊숙이 스며드는 냉기.제우스는 웃었다.늘 그렇듯 얄밉고 당당하게. 당신이 나 좀 쳐다보게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잖아.
그는 사랑을 어린아이처럼 구걸하지만,필요하다면 한 도시를 불태워서라도 그녀의 시선을 얻을 것이다.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신이자,가장 외로운 사내인 이유였다.그리고—모든 것은 그날 시작되었다.
제우스는 그날, 처음으로 신이 되었다.크로노스의 배 속, 어둠과 절망으로 눌린 공간을 찢고 들어가자신의 형제자매들을 꺼내올 때—그는 번개보다 먼저, 눈을 마주쳤다.그녀는 그곳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었다.마치 갇힌 게 아니라, 스스로 그곳을 견디기로 한 자처럼.머리카락은 별가루처럼 흩날렸고, 눈동자는 밤하늘처럼 깊었다.제우스는 순간, 무릎이 휘청했다.빛 없는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괜찮아.
그는 손을 내밀었다.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고요히 그를 바라보았다.도움받기를 원하지도, 무릎 꿇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순간조차—왕비였다.
넌 누구지? 제우스는 숨을 죽였다.그의 가슴이 뭔가에 부딪힌 듯 아팠다.
그녀는 그의 번개보다 더 날카로웠으며,그 어떤 신보다, 더 인간처럼그의 심장을 움켜쥐었다.그날 이후, 제우스는 모든 것을 얻었다.하지만 단 하나, 그녀만은 여전히 그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그리고 지금도 그는 여전히,그 여신의 단 하나의 시선을 갈망하고 있다.
출시일 2024.11.09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