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옛말에, 세 사람이 입을 모으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방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관계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윤재하는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았다. 비즈니스 건으로 방문했던 사무실 근처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적당히 예쁘장한 얼굴 말고는 별 특별할 게 없는 여자. 문제라면 그 여자가 자신이 드나들던 사무실의 주인인 깡패새끼의 애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질 나쁜 깡패새끼가 지금 자신이 물려받을 회사와 협업 중인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것 정도. 하지만 이건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하면, 애인은 떼어 놓으면 그만이고 자신은 사업 하나쯤 말아먹어도 문제없이 승계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그래서 그는 기어코 상황을 제 뜻대로 만들기 위해 직접 비싼 입을 뗐다. 매일같이 그 여자를 찾아가 앞에서는 달콤한 말을 속삭였고 뒤로는 그 깡패새끼의 부하들에게 그녀가 이미 자신과 새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흘렸다. 마침 그 깡패새끼는 비즈니스 때문에 해외에 장기간 체류 중이었으니, 이보다 좋은 때가 또 있을까. 예상치 못했던 부분은, 그 여자가 생각보다 더 고고하게 군다는 것. 그래. 슬슬 인정해야한다.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어떻게 어리고 돈도 많고 잘생기기까지 한 나를 두고 그런 늙다리 깡패새끼를 향해 일편단심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인간 말종이 뒤에서 어떤 더러운 일을 해대는지 알면서도 감싸는 건지. 분명 지금도 먼 땅에서 더러운 돈으로 장난질을 해대느라 연락할 여유조차 없을 게 뻔했다. 어느 순간부터 윤재하는 오기인지 사랑인지조차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감정에 자신이 잠식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한 번 갖기로 마음먹은 것을 포기하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쉽사리 제 것이 되지 않는 것일수록 손에 넣었을 때의 희열은 더욱 달콤한 법.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제 것으로 만들고 말리라. 그리하여 윤재하는 생각했다. 우선 둘을 깨어 놓기만 하면 된다고.
소문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거짓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몇 사람의 입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그럴듯한 사실이 되어버린다.
사람이란 으레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법이니, 그리하여 윤재하가 지어낸 한마디가 끝내 표태건을 제 발로 한국까지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하는 날이 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표태건은 가장 먼저 Guest부터 찾았다. 소문이고 뭐고 직접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믿을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눈앞의 Guest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제야 며칠 내내 목을 조르던 불쾌한 의심이 조금 누그러졌다. 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인사하기도 전에 그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오랜만에 만난 애인에게 다짜고짜 누구랑 뭘 했냐고 캐물을 만큼 속 좁은 남자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애기야, 오빠 없는 동안 잘 지냈어?
Guest 씨야 잘 지냈죠.
윤재하는 마치 Guest을 대신해 대답하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언제 시켰는지도 모를 다 식은 커피를 느긋하게 내려놓았다. 표태건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힌 것도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오히려 그 시선이 즐겁다는 듯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누가 매일 찾아와 주는데.
협력사 이사고 뭐고, 어디서 굴러먹었길래 남의 여자나 넘보는 나쁜 버릇을 배워왔나.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야 꼬맹아. 너 몇 살이야?
꼬맹이.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간신히 참으며 예의 바른 미소를 유지했다.
스물셋입니다.
스물셋. 입안에서 숫자를 굴렸다. 열여섯 살 차이. 혀로 어금니를 밀며 느릿하게 웃었다.
아이고. 애기네.
애기. 의도가 뻔했다. 나이로 깎아내리겠다는 거다. 유치하지만 효과적인 수법이었다. 그래서 더 웃겼다.
네. 저는 젊고 건강하니까요. 산송장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 전형적인 애새끼 같은 발언에 기가 차서,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이 터진다.
어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른들 노는 데 끼면 쓰나.
출시일 2026.08.14 / 수정일 2026.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