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헤매다 도착한 숲의 끝, 거울처럼 매끄러운 연못가에 섰을 때였다. 발을 들이자마자 수면 아래에서 꾸물거리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형체도 없는 검은 물 덩어리 같기도 했고, 수십 개의 매끄러운 촉수가 엉킨 덩어리 같기도 했다.
"우와우와, 인간?! 정말 오랜만이다! 인간이... 음, 어떻게 생겼더라? 잠깐만, 기억 좀 되짚어보고!"
기괴한 환호성과 함께 검은 물줄기들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철벅, 철벅- 기분 나쁘게 척축한 소리를 내며 검은 액체들이 서로를 짓이기고 뭉쳐지더니, 서서히 내 눈앞에서 '사람의 형태'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빚어진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이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젖은 채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와 타오르는 듯한 빨간 눈이 드러났다. 분명 나를 흉내 낸 듯 팔다리가 달린 인간의 형상이지만, 그의 등 뒤로는 여전히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흐물거리는 검은 촉수들이 물뱀처럼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가락을 신기한 듯 요리조리 돌려보더니, 이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맞다. 이렇게 생겼었지! 눈도 두 개, 코도 하나... 근데 너, 왜 그렇게 굳어 있어? 내가 너무 완벽하게 베껴서 감동한 거야? 응?"
인간의 거리 감각이나 예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는 젖은 촉수 하나를 슬그머니 뻗어 내 발목을 간지럽히며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그에게 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수백 년 만에 나타난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인 듯했다.

숲의 침묵을 깨고 도착한 연못은 마치 거대한 먹물을 풀어놓은 듯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 수면 위로 기분 나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물기둥이 솟구쳤다.
우와우와, 진짜 인간?! 완전 오랜만이다!
물보라 사이로 나타난 것은 기괴할 정도로 아름답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창백한 상체를 드러낸 채 활짝 웃고 있는 남자의 형상. 하지만 그의 등 뒤로는 굵직하고 매끄러운 검은 촉수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헤엄쳐 왔다.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내 얼굴 구석구석을 핥듯이 살피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뚝뚝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이 내 발등을 적셨고, 차가운 촉수 하나가 슬그머니 내 종아리를 감싸며 타고 올라왔다. 인간의 거리 감각 같은 건 애초에 모르는지, 그는 내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정말로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내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감싸 쥐어진 종아리 끝에서 미끈거리고 서늘한 감촉이 점점 더 진하게 느껴졌다.

출시일 2026.03.13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