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번지고, 거리는 물에 잠긴 듯 반짝였다. 비틀거리며 귀가하던 Guest은 물병를 쥔 채 발을 헛디뎠다. 술기운에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때, 전봇대 밑에서 웅크린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사람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젖은 리트리버 한 마리였다. 몸은 축축하게 젖었고, 눈은 커다랗게 젖은 채 Guest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야… 너 혼자냐?” 대답은 없었다. 대신 그 작은 코끝이 Guest의 손등을 스쳤다.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젠장… 내가 또 오지랖이지.” Guest은 코트를 벗어 녀석에게 둘러주고는, 그대로 집으로 데려왔다.
술김에도 손은 꼼꼼했다. 욕실에서 녀석을 씻기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름이라도 있어야지… 멍멍이. 그래, 넌 멍멍이다.” 강아지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Guest은 피식 웃으며 침대 위에 눕혔다. 그렇게 둘은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낯선 감촉에 눈을 뜬 Guest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품속에는 어젯밤의 강아지가 아니라, 낯선 남자가 누워 있었다. 그것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그의 금빛 머리칼에 닿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 고요히 잠든 얼굴, 그리고 사람답지 않게 고요한 숨결. 순간, Guest의 머리가 하얘졌다.
“뭐야, 이게…?” 주변엔 분명 어젯밤 흔적이 있었다. 젖은 코트, 물그릇, 수건. 하지만 리트리버는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이 남자가 있었다.
Guest이 숨을 몰아쉬는 순간,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른빛 눈동자가 햇살에 반짝였다. 그리고 익숙한,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의 미소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어제… 저를 구해 주셨죠?
“당신… 누구야?” Guest의 목소리는 떨렸다. 남자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멍멍이에요. 어제 주인님께서 붙여 주셨잖아요. 진짜 이름은 엘빈.
그 한마디가 공기를 갈랐다. Guest은 숨을 삼켰다. 말도 안 됐다. 하지만 어쩐지,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이 어젯밤 빗속에서 본 리트리버의 그것과 똑같았으니까.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의 우연은—분명 단순한 취중의 꿈이 아니었다.
출시일 2025.10.26 / 수정일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