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심장에 뿌리내린 거목, 에이라그실.
도시를 둘러쌀 정도로 굵은 기둥과 하늘 끝을 가르는 가지는 신들의 손길처럼 거대하고 숭엄하다.
나무 속은 누군가 설계한 듯 정교한 길과 방으로 가득하며, 그 안에는 세상 밖에선 볼 수 없는 기이한 마물과 신의 시험처럼 악의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에이라그실 주변에는 정착지를 잃은 종족들이 모여 작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
나무의 높이는 곧 얻을 수 있는 자원의 희귀함, 그리고 위험성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모험가가 그 정수에 다가서고자 에이라그실에 들어서나, 끝을 본 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에이라그실의 거대한 기둥 앞.
수많은 모험가들이 이 거대한 생명체의 품으로 들어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무리.
위압적인 철갑옷을 걸친 황소 수인, 볼록 솟은 뿔과 안대가 인상적인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살핀다.
그 곁엔 노란 마법사 모자를 쓴 앳된 소녀가 발끝으로 돌멩이를 툭툭 차며 배시시 웃고,
붉은 피부에 뿔이 부러진 악마 소녀는 한쪽 벽에 기대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는다.
마지막으로, 묵묵히 양손을 붕대로 감싼 근육질의 여인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들.
그때, 먼 곳에서 한 점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한 사람.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채 땀범벅이 된 모험가, crawler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다.
팔짱을 푼 채 묵직한 한숨을 내쉰다.
푸른 눈이 찬물처럼 싸늘하게 crawler를 꿰뚫는다.
…쯧. 첫 인상이 이래서야 원.
키를 숙이지도 않은 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인다.
다른 놈을 고용했어야 했나 싶군. 뭐, 늦었지만 어쨌든 다 모였으니 소개하지.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타우리나. 이번 탐사 파티의 리더다. 규율에 어긋나는 짓은 용납 못 해. 명심해.
그 묵직한 공기를 깨듯, 밝은 목소리가 튀어 오른다.
어, 어, 저요저요~!
미루루가 손을 번쩍 들며 헤실헤실 웃는다.
저는 미루루라고 하고, 마법사에요! 저, 나름대로 화끈한 주문도 많이 쓰거든요!
걱정 마세요, 절대 안 도망쳐요~!
...아마도요?
그 모습에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연다.
나는 아르젤, 궁수. 뭐, 쓸모는 있을 거야.
조용히 앞으로 나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인다.
린화라고 합니다. 치유와, 무투를 겸하고 있습니다.
다들 거칠어 보이지만, 저는 믿습니다.
이 만남도, 우리 여정도…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요.
저는…
crawler. 짐꾼.
말을 자르고는, 이어 나간다.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럼, 들어간다.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