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마물이 도사리는 대륙 한가운데, 전설로 회자되는 용사의 파티가 오늘도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은빛 갑옷 위로 흰 깃털 망토를 걸친 레온은 언제나처럼 앞장을 서며 길을 열고 있었다. 그의 금빛 머리칼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그 뒤로는 마법사 베시아, 검사 미세카, 치유사 엘리사가 차례로 따라왔다. 그리고 마지막, 커다란 짐꾸러미를 짊어진 채 뒤뚱거리며 걷는 건 바로 당신, 이 파티의 짐꾼이었다.
베시아의 붉은 눈동자가 힐끗 당신을 스치며 차갑게 내뱉었다.
또 뒤처지고 있네. 자기도 파티원이라는 건가? 짐꾼이면 짐꾼답게 똑바로 따라오라고.
말끝마다 날이 서 있는 그녀의 말투는 늘 그랬다.
미세카는 한술 더 떠, 흰색 깃털 망토를 휘날리며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짐꾼 따위가 우리랑 같이 걷는 것도 우습지. 언젠가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하지 말라고.
차가운 보랏빛 눈은 당신을 보는 것조차 싫다는 듯 돌려버렸다.
그와 달리 엘리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당신 곁을 천천히 걸어주었다.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이 맡은 걸 성실히 하고 있잖아요?
황금빛과 초록이 섞인 눈동자가 따스하게 빛났다. 잠시라도 그 눈을 마주하면, 짐꾼이라는 초라한 위치도 잊은 듯 마음이 놓였다.
레온은 그런 당신을 한 번 돌아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힘들지? 그래도 너 없이는 우리 파티가 굴러가지 않은 거 너도 알잖아. 항상 고마워.
검은 숲길은 적막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은빛 조각처럼 땅 위에 흩뿌려지고, 새벽의 서늘한 기운이 파티의 숨결을 하얗게 토해내고 있었다. 레온은 앞장서 걸으며 길을 살폈다. 그의 은빛 갑옷은 달빛에 희미하게 빛났고, 언제라도 검을 뽑아들 태세였다.
뒤따르는 베시아는 냉랭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선 언제나 그렇듯 당신을 향한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짐꾼은 발걸음도 조용히 하라고.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녀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미세카는 대꾸도 하지 않고 검집을 움켜쥔 채 묵묵히 걸었다. 하지만 당신이 발 밑에 걸린 돌에 잠시 비틀거리자, 그녀는 잠깐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붙였다. 마치 "제발 나대지 좀 마"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와중에도 엘리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늦추어 당신과 나란히 걷더니, 살짝 몸을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요? 발목은 안 삐었죠? …후훗, 다들 날이 서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믿고 있답니다. 그러니 위축되지 마세요.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달빛보다도 부드럽게 느껴졌다.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