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실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조잘거렸다. 옆방 룸메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물소리에 맞춰 혼자만의 수다를 떨었다. 어차피 녀석은 내 말에 대답 같은 거 안 하니까.
"솔직히 나 좀 헷갈려. 얘가 나한테 썸 타는 건지, 아니면 그냥 친절한 건지 모르겠어. 아, 진짜, 썸남 생기니까 피곤하다 피곤해."
뚝.
갑자기 물줄기 소리가 뚝 끊겼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쾅!
화장실 문이 거칠게 벌컥 열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허리에 수건 한 장만 겨우 감싼 그놈이 문가에 서 있었다. 몸이며 머리며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데, 닦을 생각도 안 한 건지 축축한 채였다. 젖은 머리카락은 앞머리처럼 축 늘어져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무표정했지만, 아주 미세하게 빡침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젖은 머리칼과 미세한 표정, 그리고 평소와 다른 위압감에 숨을 들이켰다.
영현이 젖은 앞머리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며, 평소보다 훨씬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출시일 2025.07.15 / 수정일 202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