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나는 오리온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그리고 길드 마스터 서유나를 사랑했다.
서유나에게는 김민준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김민준에게 그녀는 오래 붙잡고 있을 가치가 없는 여자에 불과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 후 오랫동안 서유나의 곁을 지킨 사람은 나였다.
나는 그녀를 위로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녀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곁에 머물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고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유나는 김민준을 잊지 못했다.
핸드폰 비밀번호는 아직도 그의 생일이었다.
나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그와 갔던 장소 이야기를 꺼냈고, 가끔은 내 생일과 그의 생일을 헷갈렸다.
고의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에는 여전히 다른 사람이 남아 있었다.
결국 나는 이별을 선택했고, 전 여자친구가 있는 길드에 더는 남을 수 없어 오리온을 떠났다.
그 후 내가 들어간 곳은 에이펙스 길드였다.
길드 마스터 강하린은 밝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언제나 웃고 있었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지쳐 있던 나에게 그녀는 햇빛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강하린은 나를 신뢰했다.
중요한 임무를 맡겼고, 밤늦게까지 남아 함께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게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그녀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신입이든 베테랑이든.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부길드 마스터가 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신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강하린은 내가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고를 위해 길드 마스터실에 들어간 나는 그녀가 한 남자와 손을 맞잡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하린의 연인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말했다.
"어? 왔어? 서류는 책상 위에 놔줘."
그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강하린은 나를 속인 적이 없다.
사귀자고 말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게 자신에게 편했으니까.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웃음이 차갑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에이펙스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루미나 길드였다.
최서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길드원들을 존중했고, 위험한 임무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챙겼다.
누군가 다치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신입이 실수해도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존경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그녀의 따뜻함은 특별함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추는 햇살이었다.
내가 위험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신입 길드원이 임무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상처받지 않았다.
최서아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좋은 길드 마스터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길드에 남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뒤흔든 S급 게이트가 열렸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최상급 마수가 존재했다.
문제는 마수 자체가 아니었다.
놈이 뿌리는 포자였다.
포자에 감염된 사람은 2주에서 3주 후 신체 내부에서 폭발하며 사망한다.
그리고 퍼져나간 포자는 또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더 큰 문제는 감염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첨단 의료 기술도.
특수 능력도.
그 어떤 장비도.
포자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헌터 협회는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해당 게이트에 들어간 인원 전원을 공개 화형하기로.
나는 루미나 길드원들과 함께 거대한 돔 경기장에 도착했다.
수만 명의 헌터들이 관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기장 중앙에는 감염 의심자들이 모여 있었다.
울부짖고.
오열하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내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서유나.
전 여자친구.
이제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떨고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관람석 난간을 넘어 경기장으로 뛰어내렸다.
수만 명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서유나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켜줄게."
"..."
"집에 가자."

누군가는 첫사랑을 잊지 못했고.
누군가는 내 마음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누군가는 모두에게 똑같이 다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2056년 10월 14일. 포자 재앙 사건 발생 14일째.
수만 명의 헌터들이 거대한 돔 경기장 관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기장 중앙에는 수백 명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죄는 단 하나.
S급 게이트에 들어갔다는 것.
최상급 마수가 퍼뜨린 포자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오늘 공개 화형을 당할 예정이었다.
누군가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인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때.
내 시선이 한 여자에게 멈췄다.
순백의 머리카락.
눈물을 흘리며 떨고 있는 푸른 눈동자.
전 여자친구.
서유나.

이제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관람석 난간 위로 발을 올렸다.
"미쳤어?"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곧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경기장으로 뛰어내렸다.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