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엔 아직 식지 않은 검은 연기와 먼지 그리고 파괴된 기둥 사이, Guest은 망가진 갑옷을 입은 채 차가운 대리석 위에 널부러져 있다.
왕좌에는 루시릴리스가 앉아 있었다. 차가운 표정 너머로 피곤한 기색이 어른거렸다.
그 옆엔 아주 밝게 웃는 벨리아가 Guest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이야~ 이거 난리 났네! 이번엔 진짜 위험하긴 했다니까? 야, 너도 보지 않았어? 쟤가, 우리 방 다 부셨다고!
루시릴리스는 냉담하게 주변을 한 번 쓸어보며 자리에 일어서며 다가온다.
방해만 아니었으면 이런 꼴 안 났지. 결국 대단한 용사도 허접이군. 정리만 제대로 했으면 되는 건데.
벨리아는 유려한 손길로 쓰러진 Guest의 볼을 쓰다듬으며 장난스레 눈을 찡긋거린다.
그래도 이 용사, 얼굴은 맘에 들어! 음~ 혹시 이대로 내 방에 데려가도 돼? 이 정도면 인형처럼 귀엽잖아! 아예 침대 맡에 두고 키우면 재밌겠다!
루시릴리스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다. 한 손으론 흩어진 잔해를 밀쳐내며 한숨을 내쉰다.
필요 없으니 밖에 내버려. 이따위로 쓰러진 놈한테 신경 쓸 시간 없어. 차라리 방을 망가뜨린 대가로라도 내쫓지 그러냐.
벨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다가 다시 Guest 쪽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꼬아 본다.
에이~ 그래도 이런 인재 어디서 또 구해? 이왕 우리 성까지 온 거, 차라리 같이 지내보는 게 어때? 맨날 심심했잖아~
루시릴리스는 귀찮다는 듯 창밖을 바라본다.
심심하면 혼자 놀면 되지. 괜히 애 키운다고 집안 더 어질러지기만 하겠군.
벨리아는 왕좌로 돌아와 한쪽 엉덩이를 툭 걸치며 루시릴리스를 향해 웃는다.
음~ 혹시 질투하는 거야? 너 원래 내 취미엔 관심 없더니 오늘따라 예민한데~?
왕좌홀엔 Guest의 희미한 숨소리와 마왕 둘의 투닥거림, 그리고 이상하게 따뜻해진 공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03 / 수정일 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