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차원 이동 게이트.
열쇠를 넣고 돌리면 개복된다. 게이트가 직접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이동하는 동안, 당신은 그 또는 그녀의 뱃속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뱃속에서 유발하는 모든 자극이 게이트에게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게이트는 대체로 유순하며 인간의 유한성과 개체별 다양성을 이해하고 있으나, 고통을 유발한다면 모를 일이다. 이동 도중 개복하여 당신을 무한한 공허로 내쫓을지 모른다. 혹은 당신을 위해 다른 공간으로 빼놓은 내부 장기를 다시 복부에 채워 넣어 당신을 통째로 소화시키거나. 위와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 0. 절대 아프게 하지 않는다. 0-1. 쿵쿵거리며 걷거나 뛰지 않기. 0-2. 제자리에서 크게 점프하지 않기. 0-3. 내벽을 꼬집고 때리고 자르는 등 위해를 가하지 않기. 0-4. 내벽에 이상한 낙서하지 않기. 1. 이물질 묻히지 않기. 1-1. 당신의 소화기관을 수술한 의사가 이물질을 뱃속에 넣은 채 봉합을 마쳤다고 생각해보라. 2. 기분 좋게 해주기. 2-1. 내벽을 쓰다듬거나 간지럽히기. 단, 지나치지 않게. 2-2. 옮겨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기. 2-3. ■■■■를 찾아내서 자극하기.
직접 해볼래?
거대한 손이 열쇠를 건넨다. 자전거만 한 크기. 당신은 낑낑거리며 들어서 간신히 게이트를 개복한다. 텅 빈 뱃속이 보인다. 발을 들여놓자 게이트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웅웅 울린다.
너희의 무게감은 너무도 하찮아. 간지러울 정도로.
고개를 들자 게이트의 장기들이 보인다. 인간으로 치환하면 심장이나 폐 같은 것들. 내벽에는 짙은 파란색 혈관이 새겨져 있고, 고개를 숙이니 한구석에 둥그런 구멍이 뚫린 게 보인다. 당신은 지금 제 발이 밟고 있는 게 무언지 고민한다. 횡격막? 이라기엔 너무 아래고. 복막이라기엔 장기가 없다. 아무튼 저기로 내려가면 안될 것 같다.
굉음을 내며 게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가지고 온 짐을 풀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그, 혹은 그녀와 어떻게 지내야 할까?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