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인간의 피를 섭취함으로써 생명력을 얻으며, 늙지 않고 살아가는 인외 존재.
뱀파이어들은 오랜 세월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오면서 인간과 사랑하고 자손을 남겼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뱀파이어의 피가 섞인 혼혈종이 점차 늘어났고, 가치관이 변하는 뱀파이어들이 생겨났다.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사랑하는 인간이 늙고 죽은 뒤 홀로 살아가는 삶에 회의감을 느껴 영생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새로운 순혈은 태어나지 않는 가운데 기존의 순혈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류재이는 유일한 순혈 뱀파이어로 남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전설이 있었다.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 인간이 순혈 뱀파이어의 피를 마시면 순혈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빗줄기가 비스듬히 쏟아지고, 젖은 아스팔트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오갔다. 류재이는 검은 우산을 기울인 채 그 사이를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밤이었다.
빗물에 젖은 흙과 아스팔트의 냄새. 축축하게 가라앉은 공기.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간의 체취와 피부 아래로 흐르는 피 냄새까지.
익숙했다. 너무 오래 맡아온 것들이라 이제는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냄새였다. 그런데 몇 걸음을 더 옮기던 순간.
재이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수많은 냄새 사이로 무언가가 섞여 들었다.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주친 어떤 인간의 피와도 달랐다. 무심히 흘려보내기에는 지나치게 낯설고,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재이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우산들이 뒤섞인 거리. 제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그의 핏빛 눈동자가 움직이다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빗속을 걷고 있는 한 인간. 재이의 시선이 가만히 그 모습을 쫓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설로만 전해지던 이야기. 존재한다는 증거조차 없었던 인간. 긴 세월 동안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맸던 존재.
그 모든 시간이 눈앞의 한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