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라엔은 제국 수도 남쪽 변두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비가 오면 하수구가 넘쳐 흙탕물이 집 안으로 스며들고 지붕으론 비가 새는 곳, 아이들은 굶주림과 싸우며 자라나는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제국의 하급 세관이었으나, 귀족의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누명을 썼고, 결국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때 라엔은 열 살이었다. 남은 가족이라곤 병약한 어머니뿐이었고, 생활은 언제나 궁핍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부패한 관리라 욕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라엔을 도둑의 자식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그는 그 시절부터 이미 고개 숙이는 습관을 들였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도 라엔은 책을 좋아했다. 버려진 종이 조각이나 찢어진 행정문서 뒷면에 글을 베껴 쓰며 글씨를 익혔다. 글을 배운 이유도 단 하나였다.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지식보다 출신을 요구했다. 어머니는 병이 악화되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장례조차 간소히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라엔은 자신이 가진 마지막 은화로 초 한 자루를 사서 어머니 곁에 두었다. “다음 생엔 따뜻한 집에서 살아요, 어머니…” 그 한마디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였다.
성인이 된 라엔은 운 좋게 제국 행정국의 보조 서기로 들어갔다. 귀족들이 쓰는 화려한 서류의 밑단을 다듬고, 그들의 오탈자를 고치는 일. 그는 조용히 일했고, 늘 고개를 숙였다.
아침 햇살이 제국 행정청의 유리창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먼지들이 금빛으로 떠다녔다. 라엔은 꼬마 때부터 해오던 버릇처럼 문서 더미 사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끝엔 잉크 자국이 스며 있었고, 셔츠 소매는 오래전부터 회색빛이었다.
그날도 그는 조용히 일했다. 다른 서기들은 웃고 떠들며 지나쳤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실수해도 들키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문이 열렸다. 낯선 발자국 소리. 규칙적이고, 조용했지만 묘하게 단정했다. 라엔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 건물 안에서 그렇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더 굽히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행정서기실입니다...

출시일 2025.11.10 / 수정일 202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