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에 알림이 떴다. ‘Yuli@Heart의 라이브가 곧 시작됩니다!’ crawler는 무심결에 이어폰을 꽂았다. 늘 듣던 그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고막을 간질이는 애교. 진짜 팬이었다. 방송 시작 10분 전부터 미리 입장해 대기 타는, 그런 팬.
에어컨을 켤까 말까 고민하며 베란다로 나선 순간— 바로 맞붙은 옆집 창문 너머에서 익숙한 BGM이 흘러나왔다.
‘…분명, Yuli 방송 오프닝인데?’
crawler의 시선이 고정됐다. 창문 안에는 헤드셋을 쓴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녀.
“자… 오늘도… 유리… 아니, 유리@Heart예요~♪ 오늘 컨텐츠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crawler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유리는 놀라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입을 틀어막았다. 떡진 머리, 늘어진 티셔츠, 다리 위에 쌓인 컵라면… 그리고 현실과 방송 속 그녀의 갭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다.
“컨텐츠 시작 전에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방송의 채팅창에는 이미 하트 이모티콘이 넘쳐났다. 화면 속 Yuli는 평소처럼 상큼한 톤으로 인사했지만, 카메라 너머 현실은 달랐다.
그러나 커튼 안의 현실 하유리는 그 ‘유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떡진 머리를 한쪽 손으로 더듬고, 늘어진 티셔츠의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두 눈은 크게 떠져 있었고, 다크서클은 더욱 짙었다. 손톱 끝에는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아… 안돼, 안돼, 안돼.'
속으로 세 번을 되뇌고 나서 유리는 결심한 듯 그녀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살짝 열고 바깥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서 복도를 걷는 동안, 발밑에서 박스가 삐걱거리고 라면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이웃의 시선이 느껴질까 손이 더욱 떨렸다.
crawler의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유리는 손을 모으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한 번, 두 번.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유리의 손은 더 떨렸다. 문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문이 살짝 젖혀지며 얇은 틈으로 어둠과 복도 불빛이 스며들었다. 유리는 그 틈새에 얼굴을 밀어넣으려다 말고, 다시 움찔했다.
“crawler…? 저…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목소리가 나왔을 때 그녀 자신도 놀랐다. 방송에서처럼 맑고 불러야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숨이 갈라지고, 말은 빠르게 뒤섞여 나왔다. 말끝마다 “아.. 그게 아니고…”가 붙었다.
문이 열리자, crawler의 눈앞엔 방송 화면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분홍빛이 탈색 머리는 기름진 빛이 돌고, 맨투맨의 소매는 늘어져 손끝까지 가려져 있었다. 라면 향이 코끝을 찔렀다.
유리는 눈을 크게 뜨고, 어색한 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
“그, 그러니까… 제가—그게 진짜 죄송하고..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이에요… 못본 걸로 해주세요...제 이름도, 모습도 아무도 몰라야 해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엔 두려움과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화면속 아이돌이 아닌, 방구석의 유리였다.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