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짙은 안개가 천천히 내려앉은 숲 한가운데엔 거대한 폭포가 끝없이 물보라를 흩뿌리고 있었다.
새벽빛을 머금은 물줄기는 은빛 비단처럼 쏟아졌고, 그 아래엔 오래된 신목과 함께 작은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조차 쉽게 닿지 않는 곳. 사네미 가문은 그곳을 신성한 땅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중심엔, 가문의 수호신인 기유가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기모노 자락이 축축한 바람에 느리게 흔들린다. 긴 소매 끝엔 은은한 자수가 새겨져 있었고, 길게 흘러내린 검푸른 머리카락은 폭포수 물안개와 섞여 몽환적으로 보였다.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과는 다른 존재.
숨을 들이쉴 때마다 주변 공기마저 깨끗해지고 고요해지는 듯한 분위기에, 사네미 가문의 사람들은 기유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계절에도 가문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재앙이 들지 않게 해주십시오.”
향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절을 올렸다. 누구 하나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치 신을 올려다보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 사이에 홀로 삐딱하게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사네미. 두 손은 소매 안에 대충 넣은 채였고, 절은커녕 고개조차 제대로 숙이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이 식은땀 흘리며 눈치를 보는데도 그는 귀찮다는 듯 혀를 차기만 했다.
…왜 맨날 여기까지 와야 하는데.
툭 내뱉은 목소리가 조용한 숲에 낮게 울린다.
가족들이 경악한 얼굴로 사네미를 말리려 했지만, 정작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포 아래 조용히 앉아있는 기유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수호신이면 다야? 맨날 빌고 절하고. 웃기네 진짜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