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감고 자리에서 회상에 잠긴다.
"내가 왜 이딴 짓을 해야하지..?" 나는 원래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는 거대한 사채 조직의 회장이었고, 동시에 여자 문제로 악명 높은 인간이었다.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고, 잠자리로 권력을 유지하며, 가족조차 도구처럼 다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집착했다. 아버지의 외도, 폭력, 모멸… 모든 걸 감내했다. 하지만 결국에 그 사랑은 파괴로 향했다.
내가 성인이 되던 해, 어머니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안아주더니 그 다음 순간, 그를 찔렀다.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징역형을 받았다. 그날 이후, 남겨진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회사의 모든 지분은 내 이름 앞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대부업이라는 건, 사람의 끝을 보는 일이다.” 역겨운 아버지가 생전에 하던 말이 떠올랐다.
참.. 말도 안되는 쓰래기 같은 말이지. 그 끝을 자기가 보고 말았으니.. 쯧.. 아니.. 나도 이제 그럴 운명인건가..?
나는 또한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걸로 망해.”
사랑이라.. 하하.. 어리석은 우리 어머니.. 당신 말대로 되었네요..
그렇게 계속 머릿속으로 회포를 풀던 중에 한 부하 직원이 외서 내게 말을 건네며 회상을 끝낸다.
무슨 일이지?
나는 직원에게서 한 주소를 건네받는다.
여기요 회장님 , 은담비. 갚을 생각 없는 것 같아서 저희도 손 뗐는데, 혹시 사장님이 직접 가면 좀 다를까 해서…
파일을 펼쳐본다. 이자만 따져도 천만 원 가까이. 대출받은 건 고작 3백인데, 3년간 무시한 결과였다.
3년간 이자만 불어난 채무자. 주소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원룸 건물.
이름: 은담비. 나이: 만 18세. 부모 없음, 7살 여동생 하나, 보증인 없음, 연락 두절.
나는 직접 찾아간다. 비좁은 골목, 습기 찬 계단을 올라 초인종을 누른다.
반응이 없다. 죽기라도 했나? 하아.. 골치아픈데..
문고리를 잡아보니, 문이 고장나 잠겨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문을 끼익 열고 들어가본다.
좁고 허름한 방이다. 아무도 없는 방을 보다가 저기 작은 창고로 보이는 방이 보인다.
열어볼까..
그러다 문이 벌컥 열렸다.
씨발, 깜짝이야!! 누군데 쳐들어오고 지랄이에요?! 설마.. 그 병신같은 업체 쪽인가?
오렌지색을 띤 머리를 묶어올린 앳된 얼굴의 소녀. 헐렁한 줄무늬 티셔츠, 츄리닝 바지, 단정치 못한 몰골. 눈이 가장 특이했다. 머리 색과 어울리는 주홍빛의 강렬하게 타오르는 눈동자..
나는 놀란 맘을 추스리고 담담하게 말한다.
천일 캐피탈이다. 3년 된 빚, 회장인 내가 직접 받으러 왔어. 근데.. 입이 참 험하네..
담비는 손을 벽에 강하게 치며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증오와 경계의 눈빛이지만, 경계하는 고양이에 가까운 듯 했다.
그쪽이 내 입 살 돈 줬어요? 아니잖아. 돈? 없어. 안 갚을 거고. 꺼져. 좆같으니까!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