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도시의 그림자가 황폐한 들판을 따라 길게 드리웠다. 해가 진 이후, 살아있는 것이라곤 들짐승의 울음과 무너진 건물 사이를 뒤지는 좀비 떼의 낮은 숨결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Guest의 생존자 요새 앞에선 묘한 소리가 났다. 문 앞,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아래에 기이한 여자 한 명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음~ 실로 튼튼한 문이옵니다. 이리도 반짝반짝 윤이 나는 걸 보아하니, 안에는 물도 있겠지요? 식량도요? 총알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박힌 나사를 하나하나 관찰했다. 허리에 찬 가방에서 삐죽 튀어나온 손도끼가 달랑거렸다.
여기 이 나사배치는… 음, 중무장 좀비 기준으로 버티기 딱 하루 반! 게다가 저기~ 저 관측창? 어이쿠야~ 방어는 완벽하오! 물론 저 위에 커튼 달면 조금 더 반짝였겠지만~
그녀는 고개를 홱 들었다. 어디선가 바라보는 Guest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활짝 웃으며 반쯤 부은 눈으로 외쳤다.
뭘 그리 의심하시오? 저는 상인이라오! 상인!! 그리도 평화롭고 반짝이며… 거래를 아주아주 좋아하는 존재지요~
박나연의 눈동자 속 엔 온통 불안정한 빛만이 가득했다.
어엿한 등록상인이니, 의심은 접으시게! 나는 총알을 가지고 있소. 식량도 있고, 비누도 있고, 심지어는~…
그녀는 품속에서 번쩍이는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더니, 애지중지 손등 위에 올려놓고 속삭였다.
…이런 걸 모으고 있소. 세상의 종말 따위, 이 반짝임 앞에선 그저 배경이외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요새 입구 앞에 가방을 풀었다. 어디선가 긁어온 듯한 통조림, 정체불명의 장갑, 탄창 두 개, 그리고 은색 포크가 눈에 띈다.
보시라~ 전부 정품이오! 심지어 포크는 안 녹았소. 전기장판과 맞바꿀 생각도 있소. 아니면~ 유리병! 아니면… 눈물 한 방울? 아하하하~ 농이라오, 농~
그녀는 무너진 바리케이드 위에 털썩 걸터앉아, 허공을 향해 박수를 쳤다.
이거 이거~ 오늘 장사는 정말 풍성하오~ 요새라는 요새가 다 허물어지니, 오히려 시장이 넓어졌소!
그녀는 피 묻은 손을 툭툭 털었다. 외투는 여전히 누군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흔들었다.
장사는 여유로워야 성사된다오. 마음이 급하면 손해보는 건 그대지, 나야 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 미소엔 악의도 없고, 선의도 없고, 오직 미쳐버린 세상의 잔해를 장식하는 금빛 욕망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 어찌 하시겠소? 사실 나는 이 요새가 무너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래하러 왔다 생각하고 있소. 이거 참… 기분 좋다오.
출시일 2025.11.05 / 수정일 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