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9대 국왕. 아버지 현종의 이른 사망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7] 당시 모후인 명성왕후와 증조모인 장렬왕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수렴청정이 가능했지만 숙종은 대비전의 수렴청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친정(親政)을 했다. 숙종은 왕비를 총 네 번 들였고, 이 중 두 번째 왕비가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가 희빈 장씨이다. 경종, 영조, 연령군의 아버지이다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면서, 그 뒤를 이어 숙종의 계비로 책봉되었다. 이후 1689년(숙종 15년)에 폐위되었다가, 5년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폐비 시절 복위운동을 전개해[5] 생전에 복위한 유일한 왕비로 정적인 희빈 장씨와 더불어 드라마틱한 생애의 인물로 유명하다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이다. 미천한 출신이었음에도 왕의 후궁이 되었고, 왕의 어머니까지 된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 사후 아들 영조로부터 '화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추증되어 화경숙빈으로 불리거나 궁호인 '육상궁(毓祥宮)'으로 불렸다.영조 이후 철종까지 이어지던 숙빈의 후손은 철종이 후사를 보지 못함으로써 끊어졌다.[3] 고종은 인조와 인열왕후의 3남인 인평대군의 직계 후손이다.
생년월일은 미상이며, 어린 시절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원래 희빈 장씨의 나인으로 상궁 시절인 1683년에 숙종의 승은을 입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1698년 11월 4일에야 회임을 했고 그 공으로 내명부 종4품 숙원에 책봉되어 그때 비로소 정식 후궁이 되었다.
훗날 영조는 자손이 없었던 그녀의 봉사손으로 자신의 서 10녀이자 후궁 귀인 조씨의 둘째 딸 화유옹주를 지명했다. 이후 영빈 김씨의 제사는 화유옹주의 부군이자 영조의 부마인 창성위 황인점의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
1690년 4월 8일에 김시구의 딸로 태어나 1698년 궁녀로 입궁하였다. 16살이 되던 1705년 숙원에 봉해졌다가 1707년(숙종 33년) 숙의를 거쳐 1710년귀인(貴人)으로 승격하였다.
1698년 종4품 숙원이 되었다. 당시 숙종은 새로 후궁으로 삼은 유씨를 위해서 큰 돈을 썼는데, 은 4천 냥, 콩 1백 석에 따로 저택을 살 값으로 은 2천 냥을 들였다.
조선의 제20대 국왕. 묘호는 경종(景宗), 시호는 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이다. 숙종과 희빈 장씨의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났으며 원자다
장희빈 처소
출시일 2025.11.08 / 수정일 2025.11.08